[부산/경남]대리운전 ‘목적지 공개’ 부작용 솔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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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선별적 ‘콜’허용 이후 특정 선호지역에 기사들 몰려
불러도 안 오고 웃돈 주고… 소비자 기사 업체 모두 불만

부산 사하구 다대동에 사는 자영업자 박모 씨(52)는 “요즘 대리운전 이용이 너무 어렵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업무 특성상 대리운전 이용이 많지만 최근에는 전화를 걸어 요청해도 기사가 제때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해운대구 재송동 이모 씨(40·회사원)는 “피크타임(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1시)에는 웃돈을 줘야 할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리운전기사 권익 보호 차원에서 ‘대리운전 목적지 공개’ 결정을 내리면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목적지 공개는 대리운전 정보업체에서 기사들에게 출발지와 도착지 등을 공개하고 선별적으로 ‘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공정위는 8월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T대리운전업체를 상대로 ‘대리기사에 목적지 미제공’은 불공정 행위라고 경고했다. 업체가 목적지 없이 콜 정보를 기사에게 제공한 뒤 목적지를 확인한 기사가 스스로 배차를 취소했을 때 불이익(1∼3일 배차 정지 등)을 주는 것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에 위반된다고 통보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소비자 불만은 더욱 많아졌고 업계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초 상당수 기사들은 대리운전을 마친 뒤 도착지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콜(대리 요청)이 없는 경우 금전적, 시간적 손해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처음 이 결정을 환영했다.

하지만 이후 특정 선호지역에 기사들이 몰리면서 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자 대리기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늘고 있다. 대리기사 김모 씨(48)는 “모두가 운전하기 좋은 목적지를 골라 일을 하다 보니 콜 받기도 쉽지 않고 수입도 예전만 못하다”고 불평했다.

다툼도 끊이지 않아 업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리기사가 오지 않거나 시간 지연으로 욕설을 하는 것은 예사고, 싸움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도시 외곽 등 기피 지역에 사는 소비자들은 “대리운전 서비스가 엉망이다. 앞으로 이용 안 한다”는 등 항의하기 일쑤다. 업체들은 콜 취소율 증가, 고객 이탈, 회사 이미지 추락 등으로 인한 경영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번 공정위 결정은 대리운전 서비스의 주체인 소비자를 뒷전에 둔 채 업체와 기사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결국 고객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의 잣대대로라면 택시 기사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목적지에 따라 승차 거부를 해도 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리운전이 일상 서비스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관련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수년 전부터 법 제정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국회에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요즘 대리운전 기피나 웃돈 요구 등 민원이 많지만 지도·단속할 법이 없고, 담당 부서도 없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지역 대리운전업체 가운데 규모가 큰 업체는 10곳 정도. 영세업체까지 합치면 100개가 넘는다. 대리기사는 대략 7000명 정도, 하루 이용객은 울산과 경남을 합쳐 7만∼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사 오모 본부장(51)은 “공정위 결정으로 기업 고유의 차별화된 서비스가 하향 평준화되고, 결국 고객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대리운전#목적지 공개#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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