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연말파티 무슨 선물 보내나” 학부모는 피곤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9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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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의 A유치원은 최근 ‘크리스마스 행사 때 자녀에게 전달할 선물을 보내달라’는 공지사항을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22일 행사에 맞추려면 진작 선물을 보냈어야 하지만 5살 자녀를 둔 주부 임모 씨(33)는 아직 어떤 선물을 보낼지 결정하지 못했다. “다른 학부모들이 어떤 선물을 준비했는지 신경이 쓰여서 유치원에 물어보고 선물을 결정할 생각이에요. 다른 학부모들이 좋은 선물을 하면 내 아이가 위축되고 실망할 테니까 쉽게 선물을 고르지 못하겠어요.”

연말파티를 준비하는 어린이집, 유치원 때문에 학부모의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파티 때 학부모가 맡겨둔 선물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행사를 하는 어린이집, 유치원이 많아 학부모들은 선물에 대한 부담감을 느낀다. 이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선물이 다른 학부모들의 선물과 비교될까봐 걱정이다.

서울 도봉구의 B유치원은 최근 연말행사 선물에 부담을 느끼지 말라는 취지로 ‘양말에 들어가는 사이즈로 자녀 선물을 준비해달라’는 공지를 보냈다. 그러자 유치원에는 “양말 사이즈에 들어가는 가장 무난한 선물이 무엇이냐” “보통 다른 학부모들은 어떤 선물을 보내나”라는 문의가 이어졌다. 학부모들은 선물사이즈와 가격에 상관없이 다른 학부모들 선물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한 유치원 교사는 “선물 사이즈를 공지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원하니 양말에 간신히 절반만 들어가는 큰 장난감을 보내겠다고 말하는 주부도 있다”며 “자기 아이만 생각하는 얌체 학부모들이 있어서 학부모들끼리 서로 눈치보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사주고 싶은 학부모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장난감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에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최근 가장 인기있는 장난감 품목은 로봇이다. 그중에서도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장난감은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18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이 장난감 150세트를 판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학부모들 때문에 개점 전부터 대기줄을 세워야 했다.

학부모들의 연말 스트레스는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쌓인다. 어린이집, 유치원 파티 때 아이들끼리 나눠먹을 음식을 보내달라는 주문 때문이다. 맞벌이 등을 이유로 음식을 보내기 어려운 학부모들의 고민이 가장 크다. 이들 학부모들은 “유치원에 배달음식을 보내도 되느냐”고 다른 학부모들에게 묻다가 “성의가 없어 보인다”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상황이 이러자 주부들이 많이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 최근 “큰 품을 들이지 않고도 정성을 들인 것처럼 보이는 음식 만드는 법”과 같은 질의응답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과일을 토끼 모양으로 깎아서 보내라” “계란을 노랗게 물들이고 깨를 박아서 병아리 모양으로 만들어라”는 등의 조언을 주고 받는다.

한편 이들 선배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조언은 더 큰 스트레스를 낳기도 한다. 유치원에 보낼 음식을 준비중이라는 한 학부모는 “열혈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유기농 음료, 글루텐 프리 빵, 저염식 샐러드 등을 준비하라는 단체카톡을 보내며 극성을 떨기도 한다”며 “연말 스트레스가 이들 학부모들 때문에 더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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