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긋는 李 vs 성내는 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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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예산정국/원내사령탑 24시]
“누리과정 예산 보장은 내 월권”… “날치기 조력자 돼” 의장에 화살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예산안 처리 등 현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예산안 처리 등 현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 부수법안 심사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여야 원내대표는 27일 긴 하루를 보냈다. 하루 종일 마라톤 회의를 벌여가며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던 두 원내 사령탑은 오후 3시 반경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전격 회동했지만 즉각적인 해결책을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피 말리는 협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두 원내대표의 24시간을 밀착 취재했다. 》

○ 이완구 새누리 원내대표

27일 오후 3시 국회 본관 2층 원내대표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의 표정은 밝았지만 왼쪽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일주일 전 실핏줄이 터졌다고 한다. 요즘 그는 잠을 잘 못 잔다고 털어놨다. 집권 여당으로서 가장 중요한 현안인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각종 여야 협상을 놓고 고민이 깊어지면서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

그는 평소처럼 이날 오전 5시 50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일어났다. 각종 조간신문 등을 체크한 뒤 오전 8시 20분 원내대표실로 출근했다. 이 원내대표의 마음은 이날 하루 종일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오전 9시 당 대표최고위원실.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원내대표는 강한 불쾌감을 공개적으로 표시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서 의결을 받아 예산결산특별위에 회부한 뒤 예산당국, 예결특위와 협의해 합당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이것이 법과 원칙이다.” 그러곤 “(특정 상임위 예산만 원내대표가 보장한다면) 여당 원내대표의 월권”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야당의 법인세 인상과 여당의 담뱃값 인상의 맞교환설과 관련해선 “이것을 어떻게 같은 기준으로 놓고 연계해서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못을 박았다.

1시간 뒤 이 원내대표는 주호영 정책위의장,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호출했다. 야당의 상임위 보이콧 상황을 분석하고 대책 등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강경 기류는 오전 내내 이어졌다. 오전 11시 그는 “야당이 왜 보이콧을 하는지 나도 모른다.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오찬 회동을 마친 김 원내수석부대표가 보고를 한 뒤 그의 표정은 밝아졌다. 곧바로 김무성 당 대표에게 회동 결과를 전한 이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내 뜻을 알았는지 (야당이) 상임위를 정상화시킨 모양이네?”라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당초 예상됐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잠시 뒤 다시 원내대표실을 찾았다. 예산안 처리와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협상 전망을 묻자 그는 “잘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고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는 사자성어로 예산안 심사 기일을 사흘 남긴 이날 자신의 심경을 설명했다. “호랑이처럼 무섭게 상황을 판단하면서 각종 상황 변수를 놓고 소걸음처럼 천천히 해나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는 “(잘)될 거다. 나는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존중하는 비둘기파”라고 했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였다.

이어 그는 집무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 뒤 급히 자리를 떴다. 개인 일정을 뒤로하고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의 비공개 회동을 위해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로 향했던 것. 하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고 28일 오전 우 원내대표와 다시 만난다는 약속만 한 채 오후 5시 30분 집무실을 떠났다.

오후 9시 30분 자택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이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예결소위 부분 정상화 관련 코멘트를 요청했다. “아이고, 힘들다”면서도 ‘허허’ 웃는 이 원내대표는 “야당과 최대한 대화와 타협으로 예산안도 협상해 좋은 관계 속에서 좋은 결론을 내길 바란다. 이 말을 꼭 넣어달라”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우윤근 새정치聯 원내대표

“예전 같으면 국회의장실을 점거했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27일 오전 10시 반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잠시 나와 “국회가 힘 있는 사람 2, 3명에 의해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그래서 개헌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담뱃세 인상안이 담긴 지방세법안을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한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에 앞서 오전 9시에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도 “입법부 수장이 예산안 날치기의 조력자가 되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며 정 의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새누리당 책임론이 이어졌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에 관한 여야 합의가 두 번씩이나 파기된 것을 거론한 것이다. 우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원칙을 중시하는) 법조인 출신 아니냐”고 비판했다. 협상 전망과 국회 정상화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자 “지켜보자”고만 했다.

우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뒤 사무실에서 협상 전략을 가다듬었다.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와 백재현 정책위의장 등 협상단과 서영교 원내대변인 등 주요 당직자들이 원내대표실에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인 윤호중 의원, MB(이명박 대통령) 해외자원개발 국부유출 진상조사위원회 홍영표 의원도 원내대표실을 찾아 20∼30분간 밀담을 나누는 모습이 목격됐다.

오후 1시 50분경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와 오찬 회동을 마친 안 원내수석부대표와 백 정책위의장이 원내대표실로 들어섰다. 우 원내대표는 협상 결과를 보고받은 뒤 즉각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과 서 원내대변인 등 원내 주요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내부 의견을 모은 우 원내대표는 오후 3시 반경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를 만나 막판 절충을 시도했다. 원내대표 간 담판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오후 4시경 자리를 떴다.

우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새누리당이 12월 2일 예산안을 단독처리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 원내지도부는 여야 협상이 끝내 결렬될 경우 “여당 주도의 예산안 단독 처리 시 예산안은 통과되더라도 법안 심의는 일절 중단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측은 “문 비대위원장이 언급한 ‘중대 결심’에는 법안 심의 중단이 당연히 포함된다”고 말했다. 앞서 문 위원장은 26일 비대위 회의에서 새누리당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하면서 “정기국회가 파행으로 치닫게 된다면 중대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새정치연합은 다양한 ‘퍼즐게임’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이 4대강과 자원외교 국정조사 공세를 강화할수록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카드와 주고받을 ‘협상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여당이 연내 처리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공무원연금 개혁안도 좋은 협상카드로 보고 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이완구#우윤근#예산안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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