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22>‘무서운 女기사 모임’ 9인 멤버, 그녀가 노랑머리 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1일 12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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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다닌 프로기사 박지연 3단. 이젠 다시 본래 머리 색깔로 돌아가려 한다. 변화가 필요했는데,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 게다가 겨울에 노란색은 추울 것 같아서란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다닌 프로기사 박지연 3단. 이젠 다시 본래 머리 색깔로 돌아가려 한다. 변화가 필요했는데,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 게다가 겨울에 노란색은 추울 것 같아서란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노랑머리 여자 프로 기사가 있다. 외국인이 아니다. 올해 봄 샛노랗게 염색한 머리로 대국장에 나타나 주변을 놀라게 한 실력파 여자 프로 박지연 3단(23). 일부 노장층에서는 "점잖지 못하게…"라는 반응도 나왔다. 염색한 이유도 궁금했고, 요즘 바둑 공부를 어떻게 하는 지도 궁금했다. 19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그를 만났다. 머리를 염색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부터 물었다.

"올해 4월쯤이던가요,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원래는 하늘색이나 분홍색으로 염색하려 했어요. 탈색을 하니 노란색이 나왔어요. 분홍이나 하늘색은 노란색에서 한 번 더 색깔을 입혀야 한다는데, 노란색도 꽤 '쎈' 느낌이 들었어요. 결국 분홍색이나 하늘색까지는 도전하지 못했지만요."

―바둑계 주변에서 말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바둑은 예의인데…'라며 마뜩잖아 한다는 반응을 전해 들었다. 제게 직접 이야기한 분은 없었다. 예의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는 최근 머리 색깔을 갈색 톤으로 바꾸었다.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라고 한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제 충분히 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염색이 의외로 관리하기가 힘들어요. 샛노랗게 했을 때는 머리 밑에서 자라나는 검은 색깔의 본 머리카락 때문에 3, 4주에 한 번씩 미장원엘 가야 했다. 이제 겨울이 되면 노란색은 약간 추워 보이기도 해서…"라며 웃었다. 내년 초면 본래의 머리색깔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국가대표 상비군에 모습이 안보이던데….


"첫 번째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다가 떨어졌다. 두 번째는 나가지 않았다. 국가대표 훈련을 열심히 받는 것이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국가대표 생활에 자신이 없었고, 무리지어 하는 공부가 내게는 그리 맞지 않는 것도 같아서…."

―그럼 바둑 공부를 어떻게 하나.


"프로기사 인터뷰에서 오전 몇 시부터 밤 몇 시까지 바둑 공부를 한다는 말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전에는 나도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달라졌다. 요즘 바둑 공부하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어렸을 때 보던 '일본 위기 명인·기성전' 12권의 기보를 놓아보며 공부한다. 비록 30, 40년 된 책이지만 돌을 놓다보면 탄탄한 기본기를 느낄 수 있다."

박지연은 요즘 바둑 실력을 늘리는 방안의 하나로 정신적인 면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는 듯했다. "지난해 여류명인전과 여류국수전에서 내리 준우승만 차지해 내 기대보다 못했다. 그게 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바둑을 왜 시작했을까' '프로기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바둑을 배운 6세부터 지난해까지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공부해온 것 같다. 올해부터는 바둑의 정신적 측면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모든 게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기도 하고, 독후감을 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놀기도 하고…. 바둑 공부는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다고 본다."

그가 올 들어 이런저런 고민으로 읽은 책이 30, 40권 정도. 학교 때 읽지 못했던 '데미안'을 비롯해 '책상은 책상이다'(피터 빅셀) '분노하라' '참여하라'(스테판 에셀) 등이 관심 있게 읽은 책이다. 영화도 좋아하는 편. 최근엔 '보이후드'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했다.

박지연은 우연찮게 바둑을 배웠다. 1996년 12월 남자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친구가 바둑학원에 가는 바람에 따라갔다는 것. 어머니 말에 따르면 박지연이 "나도 바둑학원에 보내 달라"고 졸라댔다고. 본인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이후 초등학교 2학년부터 일산의 차수권 사범 바둑도장에서 배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3까지 차 사범 집에 내제자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배웠다. 이하진 3단(26)도 차 도장에서 배운 프로. 그리고 박지연은 한국기원 연수생으로 들어가 2006년 프로 기사가 됐다.

박지연은 2010년 비씨카드배 64강, 삼성화재배 16강 진출, 여류기성전 준우승 등 발군의 실력으로 그해 여자 기사로는 처음으로 바둑대상 신예기사상을 받았다. 세계마인드스포츠 여자단체전, 정관장배 한국대표, 황룡사 가원배 등 여자단체전의 단골멤버이기도 했다. 2012년 여류국수전에서 박지은 9단을 이기고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바둑에 입문해 가장 기뻤던 순간은….


"지나간 것은 담아 두질 않는 편이다. 나는 지금이 좋다. 굳이 생각해보면 입단했을 때가 기뻤던 것 같다. 16세 입단은 당시로도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연구생 생활부터 순탄하게 프로가 돼 큰 감흥은 없었다. 온실 속의 화초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프로는 달랐다. 국내외 기전에서 성적을 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내 실력을 과대평가했던 때였다. 현실에 맞게 기대치를 조정하는 게 힘들었다. 굉장히 아팠다. 연구생 때 그 아픔을 겪었다면 프로가 되고 나서 더 견딜 만했을 텐데…."

그에게 라이벌을 물었다. 당연히 현재 여자 프로 1위인 최정 5단이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예전에 김미리 이슬아 문도원 등이 있는데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또래다. 오정아는 두 살 어리고…."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바둑의 정신적 측면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박지연은 노래와 춤을 잘 추는 프로로 알려져 있다. 그것에 대해 물었더니 "아이고"하며 손사래를 쳤다. "2010년 제천 청풍명월배 아마 바둑대회에 갔다가 우연찮게 무대에서 GD&TOP의 '하이 하이'를 부르며 춤을 췄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인상이 꽤 강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행사에 참가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결혼식 축가도 서너 번 불렀다. 하지만 이제는 고사하고 있다. 최근 프로기사밴드 동호회에서 보컬로 나와 달라는 의뢰도 있었는데 거부했다. 사실 저는 노래를 잘 못한다. 춤도 막춤 수준이다. 이제는 노래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할 것 같다."

젊은 그에게 바둑계 이슈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요즘 첨예한 복지수당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은 있지만…"이라며 말을 아꼈다. 한동안 바둑계를 달궜던 뜨거운 감자였던 '스포츠 토토' 문제와 관련해서는 "바둑 팬들에게 다가간다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도입할 수도 있다고 보지만 기사들의 위험부담이 크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가 추진하는 일련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크게 보아 방향은 맞는 것 같지만 한꺼번에 추진하다 보니 곳곳에서 마찰음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박지연은 '무여회(무서운 여자기사들의 모임)' 9인 멤버 중 하나. 김혜민 이민진 박소현 김윤영 문도원 김혜림 김나현 이영주 등이 멤버다. 또래인 무여회 멤버 문도원 김혜림, 김미리와는 더 자주 만나는 편이다. 1991년생 프로기사 모임인 '91 모임'(멤버 15명)도 1년에 한두 번 모인다. 김동호 안성준 김정현 등과는 친한 편이다.

그는 요즘 차수권 도장엘 가끔 나간다. "어려서 재미있게 바둑을 뒀던 그때를 기억하고, 초심을 생각하게 된다. 바둑을 대하는 마음이 더 정갈해진다고 할까." 그는 요즘 바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17년간 바둑을 두면서 바둑으로부터 배운 게 많다. 지금의 나를 바둑이 이끌었다. 지금 세상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좋은 세상은 아니라고 본다. 바둑을 배운 것은 혼자 잘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요즘 세상은 1등만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바둑은 어찌 보면 한가하게 비칠 수도 있다. 실제 어머니들로부터도 외면 받고 있다. 요즘 바둑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바둑은 어떤 면에서 나에 이르는 길이고, 바둑은 공부요 수양이라고 본다. 이제 나는 바둑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머리가 좋아지는 등 실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바둑에서 배우는 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둑판과 인생은 닮았다고 한다. 바둑을 둘 때는 자유롭다. 바둑판 어디에나 돌을 놓을 수 있다. 하지만 바둑 한판을 끌고 가기위해서는 어떤 '생각'이 있어야 한다. 바둑 한판을 운영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삶을 운영하는 것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물었다. "진짜 사랑을 찾고 싶다. 흔히 그렇듯 '적당한 때 적당한 사람과' 하기는 싫다. 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뷰를 마치고나니 언뜻 반항적 이미지를 주는 그의 노랑머리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사려 깊은 젊은이였고, 바둑을 소명으로 아는 프로였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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