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문재인의 당권 도전을 許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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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 대권·당권 분리론 “대선주자 보호”는 궤변일 뿐
친노 패권 막기 위해서 아닌가
운명 거부 못하는 훌륭한 인품… 써준 대로 읽는 듯한 문재인 발언
리더십 입증한 뒤 대선 도전하라… 단, 낙선하면 정계 떠나야 할 것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지난달 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7주년 기념 만찬행사는 작은 노무현공화국 같았다. 헤드테이블에 이해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주빈처럼 앉았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500여 명의 ‘노무현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후원을 맡은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참석한 그날 유독 눈길을 끈 것은 문재인 의원의 불참이었다. 언론은 “지역구 일정이 있어 불참했다”고 언급했지만 그의 블로그 속 10월 달력엔 3일 일정이 빈칸으로 돼 있다.

문재인에게 진짜 지역구 일정이 있었는지, 핑계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누구도 의심치 않던 ‘친노의 좌장’이라는 그의 투명감투를 의심하는 사람이 생겨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9월 중순 박영선 당시 비대위장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영입 움직임에 그가 동의했네, 안 했네 진실게임이 벌어지자 원조 친노 좌장인 이해찬이 ‘바지사장 문재인’에게 경고장을 날렸다는 추측도 있다.

요즘 문재인이 딴사람이 됐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안희정을 의식해선지, 9월 22일 처음 참석한 비대위에서 “정당혁신과 정치혁신이 제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고 여기에 제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하는 등 계파청산 같은 과감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본인은 아직 아니라지만 내년 2월 전당대회를 겨냥해 당권 도전의 시동을 건 모습이다.

새정연 내 비노(비노무현)는 물론이고 적잖은 사람들이 다양한 논리로 대선주자 당권 불가론을 강조한다. 나는 문재인이 당권에 도전해야 한다고 본다. 이유는 단 하나, 문재인의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 정말 궁금해서다.

486 대표주자인 우상호 의원은 “안철수 같은 분이 대표가 된 후 단수(單數) 지지율이 됐다”며 점잖게 문재인의 당권 도전을 반대했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화법이다. 안철수가 넉 달이라도 당 대표 모습을 보여줬기에 다음번에 나오면 찍겠다, 안 찍겠다 결정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재인이 또 나오면 또 깜깜이 투표를 하란 말인가.

사실 문재인도 안철수 같은 초선일 뿐이다. 이해찬의 그랜드 플랜대로 2012년 대선 야권 단일후보가 되고 48%의 지지율을 올렸지만 인품 좋다는 것, 그래서 본인이 원치 않는 운명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만큼 훌륭한 분이라는 건 알겠다. 그러나 리더십은 검증된 바 없다. ‘열린 자세’와 거리가 먼 친노가 문재인 말이라고 무조건 따르진 않는다는 사실도 ‘이상돈 파동’에서 드러났다.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할 만한 비전과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문재인은 작년이나 올해나 정국이 제자리로 돌아갈 만하면 반드시, 그것도 꼭 한 박자씩 늦게 발목 잡는 정치를 했다. 특히 지난달 24일 거의 모든 비대위원들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연기’를 문제 삼았을 때 문재인만 생뚱맞고도 한가롭게 전셋값 폭등을 언급한 이유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누가 일러주거나 써주지 않으면 말을 못하는 것처럼 그는 사흘이 지난 뒤에야 “대한민국 군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전작권을 언급했다.

나는 거기까지가 문재인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가 당권 도전에 나서는 것도 생계형 친노에 떠밀려서가 아닌가 싶다. 그들에게는 다수당이 되거나 집권하기보다는 자신의 금배지가 더 중요하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만일 유능한 참모들이 있어 문재인의 부족함을 채워준다면 훌륭한 당 대표가 못 될 것도 없다.

새정연이 선거마다 패한 이유를 친노 강경파의 패권주의로 보는 비노와 중도 온건파에게 문재인의 당권 장악은 재앙일 것이다. 당권은 공천권이므로 “당이 깨진다”는 배수진을 치고 막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그러나 바지사장이든 최대주주이든, 트위터나 날리는 것보다는 당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다. 설령 문재인을 주저앉혀 비노 당 대표가 탄생한들 친노 등쌀에 배겨날 리 없다. 어떻게든 흔들어 총선 공천 전에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다. 박영선 전 비대위장이 산증인 아닌가.

당도 한 번 이끌어보지 않은 사람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는 무모함은 한 번으로 족하다. 새정연은 국민에게 판단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문재인의 당권 도전을 허(許)하기 바란다. 당선되면 문재인은 약속대로 당 혁신에 매진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2017년 대선 도전을 결정하면 된다. 단, 낙선하면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한 만큼 깨끗이 정계를 떠나야 할 것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문재인#대선주자#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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