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기문 유엔총장이 계파 대권놀음의 불쏘시개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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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보좌진이 어제(현지 시간 4일) ‘언론대응 자료’를 내고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반 총장의 향후 국내정치 관심을 시사하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다”며 “반 총장은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유엔 회원국과 사무국 직원들로부터 불필요한 의문이 제기되고 직무수행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여론조사를 포함한 국내정치 관련 보도 자제도 요청했다.

2006년 말 사무총장에 취임해 2011년 연임에 성공한 그의 임기가 2016년 말까지다. 2년이나 남은 시기에 벌써 다음 거취를 말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 보도자료에서 반 총장은 대선(2017년)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명확히 선을 긋는 대신 ‘현직에 충실할 것’만 강조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출마선언이 아니냐고 거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반 총장 자신도 5년 전에는 사무총장 재선을 염두에 두고 “나를 국내 대선 여론조사에서 빼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이번에는 여러 여론조사가 나온 뒤에야 대응했다. 국내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두루 만나고 축하 동영상 요청에도 응해주는 편이어서 “정치에 뜻이 없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실 반 총장을 가장 먼저 국내정치의 진흙탕에 끌어들인 것은 여당의 친박(친박근혜)계 모임이었다. 친박들의 국가경쟁력포럼은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던 지난달 29일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다. 앞서 비박(비박근혜)계 김무성 대표가 같은 달 16일 ‘정기국회 후 개헌 봇물’ 발언으로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린 다음날부터 이틀 동안 반기문 총장을 넣은 차기 대선 여론조사가 있었다. 마땅한 차기 주자가 없는 친박들이 이런 흐름을 타고 반 총장을 내세워 김 대표의 독주도 막아 보려는 꼼수로 비친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권노갑 고문이 3일 “반 총장 측근들이 (반 총장이) 새정치연합 쪽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며 친노(친노무현) 주류를 견제하고 나섰다. 현직 대통령 임기가 3년 이상 남았는데 정치권이 벌써 차기 주자 논의에 열을 올리는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여야 계파마다 반 총장을 대선 ‘불쏘시개’로 띄우는 것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이다.

반 총장이 소임을 훌륭히 마치고 대한민국의 다음 5년을 이끄는 데 최적격이라고 스스로 판단한다면 대선 출마는 그의 정치적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유엔총장으로서 순수성과 권위를 의심받지 말아야 한다. 실패한 유엔총장이 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나라를 위해서나 유엔을 위해서나 불행한 일이다. 국내 정치권과 반 총장의 자중자애(自重自愛)가 필요하다.
#반기문#유엔#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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