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중국 농촌 가렴주구 참상 고발… 출간 즉시 禁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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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농민 르포/천구이디, 우춘타오 지음/박영철 옮김/526쪽·2만8000원·도서출판 길

2012년 중국 광둥 성 광저우 시에서 촌정부의 토지 수용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1000여 명의 왕강 촌 주민들. 동아일보DB
2012년 중국 광둥 성 광저우 시에서 촌정부의 토지 수용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1000여 명의 왕강 촌 주민들. 동아일보DB
1993년 2월 21일 중국 안후이 성 산골의 한 젊은 농민 딩쭤밍(丁作明)이 백주 대낮에 파출소에서 맞아 죽었다. 그것도 ‘인민의 수호자’라는 치안대원들로부터 사정없는 발길질을 당하고 전기곤봉과 몽둥이찜질로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됐다.

그는 왜 개처럼 맞아 죽었을까. 딩쭤밍의 죄라면 ‘농민 세금이 너무 많다’고 상급기관에 호소(상방·上訪)한 것밖에는 없었다. 딩쭤밍의 마을 한 사람 연평균 수입은 400위안(약 6만8500원) 정도인데 촌정부에서 거둬가는 돈은 한 해 103.17위안(약 1만7500원)이나 됐다. 중앙정부에서 규정한 5%의 5배가 넘었다.

딩쭤밍은 촌정부에 줄기차게 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들은 척 만 척했다. 심지어 그를 조롱하거나 업신여기기까지 했다. 그건 뻔했다. 촌의 당지부 서기와 간부 등이 모두 한통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농민에게 불법적인 세금과 각종 비용을 부과했고, 그렇게 거둬들인 돈은 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거대한 ‘부패 먹이사슬’이었던 것이다.

중국은 농민의 나라다. 13억 인구 중 9억 명이 농민이다. 중국 역대 왕조의 밑바탕도 하나같이 농민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부든 정권을 장악하면 농민을 푸대접하고 착취하거나 탄압했다. 현재 중국 공산당도 별로 다르지 않다.

1억3000만 명에 이르는 농민공(農民工·농촌을 떠나온 도시 하급 이주노동자)은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 수시로 터지는 농민시위도 예사롭지 않다. 상방하러 베이징에 상경한 농민은 불법 사설감금시설인 ‘흑감옥’에 갇혀 학대와 구타를 당한다. 중앙정부는 이를 알고도 모른 체한다. 중국 속담처럼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기만’ 한 것이다.

이 책은 중국의 르포작가 부부가 3년에 걸쳐 안후이 성 구석구석을 발품 팔아 기록한 ‘중국농촌보고서’이다. 2004년 출간 즉시 금서(禁書)가 됐다. 하지만 해적판이 돌며 중국 내에서 1000만 부 넘게 팔렸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 이탈리어로 번역되었으며 독일의 ‘레트레 율리시스’상 대상도 받았다.

중국의 ‘3농(농민, 농촌, 농업)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농민은 괴롭고, 농촌은 가난하며, 농업은 위험하다. 2011년 광둥 성 우칸 촌 농민시위는 중국 역사상 처음 직접선거로 ‘촌민위원회’를 구성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당시 촌정부 간부가 제멋대로 팔아치운 농민들의 토지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해결은커녕 시위지도자 좡례훙(莊烈宏)은 중국 정부의 탄압에 못 견뎌 미국으로 망명했다.

‘어제 성안에 갔다가/손수건에 눈물 흥건히 적시고 돌아왔네/온몸에 비단을 감은 사람들은/누에를 치는 사람들이 아니었네(昨日到城廓 歸來淚滿巾 遍身綺羅者 不是養蠶人)’(작자 미상)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중국 농민 르포#딩쭤밍#3농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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