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 지급률 80%에 ‘선생 팔자론’이 가져온 효과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1일 0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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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팔자론'이 가져온 놀라운 효과

"선생이 직업인 사람이 있고 전문가인 사람도 있지만 저는 팔자인 것 같습니다."
기자가 남궁 문 원광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에게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들은 왜 그토록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느냐"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직업이 선생인 사람은 할 일만 하고 전문가인 선생은 꼭 돈을 받아야 하지만 선생을 팔자로 여기는 사람은 어미가 본능적으로 새끼를 보듬듯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대학교를 취재하면서 '선생 팔자론'을 듣기는 처음이다.

'선생 팔자론'은 정년이 3년밖에 남지 않은 이 학과 전시영 교수가 '토목공학도를 위한 수학'을 11월에 낸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왔다. 진 교수는 수학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토목환경공학과 학생들을 위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수학 교과서'를 만들었다. 선생이 팔자라는 사명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들은 학생들을 위해 팔자론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남궁 교수는 2011년 '건설공학도를 위한 CAD기초'란 책을 집필해 2학년 전공필수인 'CAD&BIM'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조지아텍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교량구조 전문가인 박주남 교수는 쪽지시험, 레벨테스트 등을 통해 강의의 긴장도를 높이면서도 한편으론 시간을 쪼개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교수들은 영어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교재도 만들 예정이다.

기자는 '선생 팔자론'이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들의 열의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본다. "지방대학은 잘 가르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남궁 교수의 말은 토목기사 합격률을 비롯한 각종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다. 토목기사시험에서 원광대 토목환경공학과의 합격률은 50%. 다른 대학 같은 학과의 합격률 30~40%와 비교해도 좋은 성적이지만 이 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능 평균이 4, 5등급, 혹은 그 이하임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성적이다. 남궁 교수는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통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입학당시의 실력에 얽매이지 말고 어떤 학생들이 들어와도 책임지고 잘 가르쳐야 한다. 그게 선생이다"라고 말한다. 학생들의 수준은 '팔자가 선생'인 교수 덕분에 3학년이 되면 지방 국립대 유사학과 학생들과 비슷해진다고 한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토목공학과에 수시로 입학한 4학년 홍준화 씨(24)는 토목기사자격증을 바탕으로 1군 건설업체인 '강산건설' 입사에 성공했다. 홍 씨는 교수들에게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 요령, 입사할 때의 자소서 작성법과 면접 방법 등을 조언 받은 덕분에 입사에 성공할 수 있었다면서 교수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토목환경공학과 장학금 지급률은 80%에 달하고 340명의 재학생들은 학기당 평균 78만 원 정도의 장학금을 받는다. 학생들에게 매년 지급하는 8억3000만 원의 장학금 대부분은 교수들이 발로 뛰어서 만든 것이다. 토목환경공학과는 10년 전부터 그린에너지 분야에 특화된 교육환경을 구축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원광대 내에서도 우수학과로 꼽혔을 뿐 아니라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사업에도 선정되고 있다. 최근 토목환경공학과는 지방대 토목공학과 최초로 교육부 선정 '명품학과'에 꼽혀 그간의 성과를 학내외로부터 인정받았다. 이 성과들은 장학금을 따내 학습 환경을 개선하는 선순환 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학과 이름에 환경이 들어간 이유도 지금껏 축적해왔던 역량의 표시다. '학생역량장학금'은 제자들에게 공부를 더 시키려는 스승의 마음이 담겨 있는 독특한 장학금이다. 영어성적과 학점이 전 학기 대비 향상된 정도와 자격증을 신규로 취득한 학생 중 좋은 성과를 거둔 학생에게는 최대 1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학생들의 성취의욕을 자극하려는 것이다.

토목환경공학과는 미래비전을 취업과 연계해 '공무원 및 공사 진출 역량 강화'와 '해외건설업체 진출'에 두고 있다. 학과는 10년 전부터 학생들 스스로 운영 중인 공무원 및 공사 시험 준비를 위한 '공공정책 동아리'에 전용 공부방과 운영비를 지원하고 시험에 필요한 특강도 많이 해주고 있다. 학생들의 노력과 학과의 지원에 힘입어 토목환경공학과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91명을 공무원 시험에 합격시키는 등 해마다 20명 안팎의 공무원을 배출하고 있다. 남궁 교수는 토목 기술직 공무원은 채용인원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토목환경공학과는 요즘 건설 회사들이 해외 근무 인원을 따로 뽑는 추세에 주목해 학생들이 글로벌 마인드와 어학 실력 등을 기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취업률을 끌어올릴 계획도 추진 중이다. 현대건설에서 40년간 근무했던 홍창남 교수는 '해외프로젝트의 예'라는 강의를 맡아 학생들에게 해외건설현장에서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있다. 학과는 내년부터 해외건설 현장에 취업 의향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현장견학 프로젝트'도 운영할 예정이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 시스템'은 강의실과 현장을 잇는 실무형 교육을 뜻한다. 토목환경공학과가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교육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3년 동안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가장 필요한 과목이 무엇인지를 물어서 그 결과를 교육과정에 반영한 것이다. 당연히 학생들의 호응과 평가가 좋다. '교통공학 및 설계' 과목을 들으면서 '자전거 도로'에 대한 프로젝트를 연구 중인 3학년 이준원 씨(24)는 "전주시와 익산시의 자전거 도로 실태를 연구해 개선점을 시청에 건의할 생각이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전공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고 멀게만 느껴졌던 교통공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현장을 경험한 후엔 강의시간이 기다려지고 재미도 늘었다. 팀원들끼리 관계가 좋아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학과는 모든 강의를 프로젝트 기반으로 진행하는데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프로젝트의 주제를 선정해 진행하고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멘토 역할을 한다. 프로젝트 기반 시스템은 학생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고 대안 능력을 개발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남궁 교수는 "지방대학이 안고 있는 지역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거리 저항'을 없애겠다"고 말한다. 대학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 중의 하나가 취업률인데 원광대 토목환경공학과를 '공무원·공사 명품학과'로 키워 '세간의 기대'에도 부응하겠다는 것이다. 기자는 '선생 팔자론'이라는 말에 응축된 교수들의 열정이 "비록 들어올 땐 실력이 떨어져도, 잘만 가르치면 공무원, 공사에 얼마든지 학생들을 합격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산=이종승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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