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스스로 질서유지 ‘팬수호대’… 사전심의 철폐운동…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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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시대’가 만든 팬 문화

‘서태지 시대’의 또 다른 축은 서태지 팬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공식 팬클럽을 운영한 적이 없다. 1993년 공식 팬클럽 ‘아이비’가 창단됐지만 준비 부족, 콘텐츠 부족 등으로 1년여 만에 운영이 중단됐다. 대신 당시 만개하기 시작했던 PC통신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팬 모임이 생겼다.

서태지 팬덤을 이전 팬덤과 구분 짓는 차이점 중 하나는 팬덤의 충성도다. 서태지가 1년 이상 휴식기를 가지며 다음 앨범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우상에 대해 시간을 들여 학습하기도 했다.

서태지 팬으로 활동했던 김영인(가명·31) 씨는 “서태지 팬들이 ‘팬질’을 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공부’였다. 음반을 사면 반복해서 들으며 가사를 숙지하고 그 의미에 대해 토론하는 식이었다. 여러 장 사서 친구들에게 돌리면서 같이 연구하자고 했다”고 회고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출연하는 공개방송이나 행사에서 팬들의 질서 유지가 문제가 되자 ‘태지팬수호대’라는 자생적 조직이 생겨났다. 팬들을 줄 세우고 행사장 입장을 관리하는 일종의 행사 진행요원 역할을 하는 이들이었다. 이후 H.O.T. 등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 임원들의 역할을 이들이 미리 보여준 셈이다.

서태지 은퇴 이후에도 팬클럽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가 발족했고 1997년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태지매니아, 서태지닷컴 등 팬들이 자체적으로 꾸려가는 팬사이트가 등장했다. 2012년에는 팬들이 모여 만든 20주년 기념 ‘서태지 아카이브’ 사이트가 오픈했다.

팬클럽이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도 이전과 달랐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5년 발표한 4집 수록곡 ‘시대유감’이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 방송 불가 판정을 받자 팬들은 사전심의제도 철폐 운동에 들어갔고, 결국 이 제도는 철폐됐다. 2000년 SBS ‘한밤의 TV 연예’가 편파 방송을 한다는 이유로 팬들은 광고 중단 운동을 벌였고, 일부 기업은 실제로 광고를 중단했다. 2004년에는 서태지 7집 수록곡 ‘빅팀’이 방송 불가 판정을 받자 ‘빅팀 살리기 운동’을 전개했다. 서태지 측 역시 팬들에게 음성사서함 공지로 항의 메일을 보낼 주소를 알려주는 등 팬덤의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유도했다.

H.O.T.의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팬덤이 어느 정도 형성되자 공식 팬클럽을 창단해 서태지 팬덤과 군소 팬클럽이 하던 역할을 한 곳으로 통합했다. 다른 아이돌 그룹도 뒤따랐다. 2001년 H.O.T.가 해체하자 팬들이 시위하고, 기획사와 가수 간 수익 배분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서태지 팬클럽과 닮은꼴이다.

서태지 팬이었던 이모 씨(31)는 “서태지 팬 중 상당수가 다른 아이돌 그룹 팬으로 옮겨갔는데 다른 가수의 팬들보다 나이와 경험이 많다 보니 팬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아이돌 팬덤 문화를 서태지 팬들이 만들어낸 셈”이라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토요판 커버스토리#서태지#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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