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에볼라에 체면 구긴 오바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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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차르’ 임명요구 무시하다… 뒤늦게 非전문가 자리에 앉혀 논란
발병국 여행객 입국금지도 舌戰… 쿠바 협력 제의에도 선뜻 답변 못해

에볼라 사태가 확산되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의 위기관리 리더십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공습 결정 과정에서 드러났던 특유의 ‘햄릿형 리더십’이 에볼라 사태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에볼라 차르(총괄 조정관)’의 임명 과정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권의 조정관 임명 요구에 토머스 프리든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 등의 재신임을 고집했다. 그러나 잇따른 감염자 발생으로 대책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17일 뒤늦게 조 바이든 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론 클레인을 임명했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19일 CBS 인터뷰에서 클레인을 “민주당의 기관원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공화당의 차기 대선 주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보건과 과학지식이 부족한 정치적 인사”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정가에는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력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서아프리카 여행객의 자국 내 입국 금지 문제도 “득보다 손해가 많다”는 기존 판단만 반복할 뿐 반대파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내 첫 사망자 토머스 에릭 덩컨 씨가 라이베리아 여행 뒤 감염됐고 이후 간호사들에게 옮긴 만큼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일각에서도 입국 금지론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의학 전문가들도 가세했다. 제럴드 와이스먼 뉴욕대 랭곤메디컬센터 교수는 19일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일부 아프리카 국가도 에볼라 발병국 주민의 입국을 금지해 효과를 봤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적대국가인 쿠바가 “에볼라 퇴치에 협력하자”며 ‘어렵사리’ 내민 손도 선뜻 잡지 못하고 있다. 쿠바는 에볼라가 창궐한 서아프리카에 의료진 460명을 파견하기로 결정하는 등 에볼라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18일 공산당 관영 기관지인 ‘그란마’에 기고한 글에서 “쿠바는 에볼라 퇴치를 위해 기꺼이 미국 의료진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오랜 적대관계인 미국과 쿠바 간 평화가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협력 방식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카스트로의 깜짝 협력 제의는 전날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에볼라 퇴치에 적극 나선 국가들을 거론하며 “쿠바 의료진의 용기를 치하한다”고 공개 감사의 뜻을 밝힌 가운데 나왔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 제의에 아직 공식적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0일 사설에서 “에볼라와 싸우는데 워싱턴이 아바나와 외교적으로 소원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쿠바 의료진의 부족한 의료장비와 의료기술 등을 감안하면 자국으로 돌아온 뒤 2차 감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서둘러 두 나라가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쿠바 의료진은 2010년 아이티 지진 때 콜레라 환자 치료를 도왔으나 귀국한 뒤 100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에 콜레라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공한 적이 있다.

한편 미 국방부는 에볼라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의사, 간호사, 전염병 전문가 등 30명으로 이뤄진 ‘신속 대응단’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이들은 텍사스 주 샘휴스턴 기지에서 1주일간 에볼라 관련 교육을 받은 뒤 30일 동안 ‘미국 어디로든 언제든 파견될 수 있는 상태’로 대기하게 된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박희창 기자
#에볼라 차르#오바마#수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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