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해저 7000m까지 시추… “造船한국의 자존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10월말 北海로 인도되는… 대우조선 반잠수식 시추선 타보니

45m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한 것도 잠시, 일렁이는 푸른 바닷물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다가 보인 곳은 ‘문풀’이라고 불리는 네모난 구멍이다. 바다가 보이고 달빛까지 비치면 마치 풀장 같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시추를 위해 바다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엔지니어들이 이곳에서 외로움을 달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7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이달 말 북해에 인도되는 반잠수식 시추선에 직접 올랐다. 해양 플랜트의 한 종류인 반잠수식 시추선은 절반 정도가 물에 잠긴 채 해저에 매장된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자원을 뽑아내는 선박이다. 이 시추선은 시추봉을 수심 3000m까지 내린 뒤 땅속으로 7000m까지 뚫어 시추할 수 있다.

조선산업에서 중국과 일본의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반잠수식 시추선을 포함한 해양 플랜트가 중국이나 일본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핵심 분야로 꼽힌다. 영국의 조선·해운분석기관 클라크슨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은 선박 9척(42만1528CGT)을 수주해 중국(35척, 92만2800CGT) 일본(20척, 55만1850CG)에 밀렸다. 한국이 CGT 기준으로 일본에까지 밀린 건 4, 6월에 이어 올해 세 번째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중국이나 일본은 소규모 벌크선을 값싸게 많이 건조해서 클라크슨 수치에서는 유리하지만 극심해용 반잠수식 시추선은 실적이 전혀 없다. 선주의 요구에 일일이 예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해양 플랜트를 건조할 기술이 중국과 일본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시추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배 모양은 아니다. 파도에 부딪치는 부분이 4∼6개 다리 형태로 돼 있다. 물에 닿는 면적이 좁아서 거센 파도와 바람을 견뎌야 하는 해역에 주로 투입된다.

작업복을 입고 안전화를 신고 안전모에 보안경까지 쓴 뒤에야 시추선에 오를 수 있었다. 외부인이 시추선을 타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고 한다. 동행한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도 “시추선에 승선하는 건 몇 년 만에 처음이다. 게다가 인도 직전의 것을 타보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탑승한 시추선은 대우조선해양이 2012년 1월 노르웨이의 시추선 전문선사 오드펠로부터 6억2000만 달러(약 6603억 원)에 수주한 것. 이달 말 조선소를 떠나 싱가포르와 아프리카 모리셔스 등을 3개월 정도 항해한 뒤 북해에 설치된다.

상부 갑판에 올라가니 곳곳에서 페인트 작업이 한창이었다. 조귀철 기감은 “높은 염분 탓에 선박 부식이 빨라 페인트칠을 3번 정도 한다. 건조 작업의 마지막이 세 번째 페인트칠이다”라고 말했다. 페인트 작업 때문에 이날부터 작업장에서의 흡연이 금지됐다.

문풀 위쪽으로는 ‘데릭’이라는 80m 높이의 시추탑 2개가 우뚝 솟아 있었다. 반잠수식 시추선의 핵심이 되는 드릴링과 서브시 작업 등을 조절한다. 서브시 작업은 드릴링 작업을 통해 얻은 자원을 관으로 뽑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상부 갑판 한쪽에는 선실이 있다. 계속 바다 위에서 생활해야 하는 엔지니어 158명이 몸과 마음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씻어내는 공간이다. 침실 레스토랑과 같은 기본 시설부터 사우나 헬스장 탁구장 영화관 병원 회의실 등이 모두 갖춰져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거의 호텔에 버금간다고 보면 된다. 위성전화나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고 최근에는 스크린골프장을 설치해 달라는 선주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추선은 한번 해상에 설치되면 적어도 20∼30년간 육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엔지니어들은 4주간 배에서 생활하고 헬기를 타고 4주 동안 육상으로 나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한다.

반잠수식 시추선 건조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는 하루 평균 1000∼1100명이다. 이 가운데 10%가 외국인으로 영국 호주 싱가포르 미국 영국 등 국적이 다양하다. 건조 작업을 감독하기 위해 파견 온 선주사 측과 조타실에서 시운전을 하는 인력도 모두 외국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반잠수식 시추선 건조 실적이 세계 1위다. 지금까지 총 20기를 인도했고 현재 5기를 건조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984년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반잠수식 시추선 두성호를 건조해 한국석유공사에 인도했다. 두성호는 1998년 한국 최초의 가스전인 ‘동해-1’ 가스전 탐사 시추에 성공해 한국을 95번째 산유국 대열에 진입시키는 데 기여했다.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국내 조선 ‘빅3’는 2000년 후반부터 해양 플랜트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반 상선 시장 수요가 하락하고 유가 강세가 지속되며 해양 개발 수요가 높았던 때였다. 그러나 올해는 저유가가 계속되며 오일 메이저들이 시추선을 거의 발주하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현재는 업황이 다소 주춤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석유와 가스가 주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거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해양 플랜트 수요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거제=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반잠수식 시추선#대우조선해양#옥포조선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조타실에서 한 엔지니어가 시운전을 하고 있다. 조타실은 배 운영에 관한 모든 과정을 관여하는 곳이다.

조타실에서 한 엔지니어가 시운전을 하고 있다. 조타실은 배 운영에 관한 모든 과정을 관여하는 곳이다.

기자가 직접 반잠수식 시추선을 타봤다. 이 해양플랜트는 육지로 꽤 멀리 나와서도 사진 한 컷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기자가 직접 반잠수식 시추선을 타봤다. 이 해양플랜트는 육지로 꽤 멀리 나와서도 사진 한 컷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국내 유일의 시추선으로 현재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 정박중인 두성호가 건조30년을 맞아 
시추선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갖고 그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추드릴이 작동하는 모습을 
언론에 시연해 보이는 관계기술자들

국내 유일의 시추선으로 현재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 정박중인 두성호가 건조30년을 맞아 시추선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갖고 그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추드릴이 작동하는 모습을 언론에 시연해 보이는 관계기술자들

국내 유일의 시추선으로 현재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 정박중인 두성호가 건조30년을 맞아 
시추선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갖고 그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추드릴이 작동하는 모습을 
언론에 시연해 보이는 관계기술자들

국내 유일의 시추선으로 현재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 정박중인 두성호가 건조30년을 맞아 시추선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갖고 그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추드릴이 작동하는 모습을 언론에 시연해 보이는 관계기술자들

국내 유일의 시추선으로 현재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 정박중인 두성호가 건조30년을 맞아 
시추선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갖고 그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추드릴이 작동하는 모습을 
언론에 시연해 보이는 관계기술자들

국내 유일의 시추선으로 현재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 정박중인 두성호가 건조30년을 맞아 시추선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갖고 그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추드릴이 작동하는 모습을 언론에 시연해 보이는 관계기술자들

고마워요, 두성號” 30년동안 맹활약한 국내 첫 시추선

고마워요, 두성號” 30년동안 맹활약한 국내 첫 시추선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