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부 거짓말에 속아 재입북한 엄마, 선전용 회견 끝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3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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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우리 어머니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여러분 도와주세요."

한국으로 탈북했다가 북한에 돌아간 고경희 씨(39·여)의 아들 차성혁 군(13)이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애타게 외쳤다. 경희 씨는 2011년 탈북했다가 이듬해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갔다. 현재는 정치범 교화소에 수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희 씨의 오빠 고경호 씨(45)는 이날 북한정의연대가 주최한 '재입북 고경희 씨 북한 보위부 탄압과 정치범교화소 수용 고발' 기자회견에서 차 군과 함께 참석했다. 둘은 지난해 12월 함께 탈북해 올해 3월 말 한국에 입국했다. 보통 탈북자들은 신분 노출을 꺼리지만, 고 씨는 "우린 죄가 없으며 진실을 알리겠다"며 공개 회견을 자청했다.

경희 씨는 재입북한 뒤 지난해 1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공화국에서는 천벌을 받아 마땅할 저를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따뜻이 안아주었다"고 말했다. 이때 "(북한 당국은) 어머니, 두 자식과 함께 새집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줬다"고도 진술했다.

고 씨에 따르면 경희 씨는 탈북한 뒤 딸(14)이 엄마를 간절히 그리워하자 북한행을 고려했다. 그가 동생의 귀환 의사를 전하자 북한 보위부는 "돌아오면 탈북한 죄를 따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경희 씨가 재입북 후 평양 기자회견을 앞두고 "오빠를 직장에 복귀시켜주고, 작고한 아버지의 사망원인을 밝혀달라"고 요구하자 보위부는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정작 기자회견이 끝나자 약속은 온데간데 없었다. 보위부는 경희 씨에게 "너는 반역자다. 원수님께서 용서해줬는데 보답을 해야 한다"며 혜산광산에 배치해 일을 시켰다고 한다. 경희 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반역자란 소리를 들으며 매도 맞고 괴롭힘을 당했다.

고 씨는 자신이 탈북하자 보위부가 경희 씨에게 강도 높은 구타와 고문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정은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왜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는 원인을 따지지 않고 고향을 떠난다는 이유로 반역자라며 정치범 교화소로 보내느냐"고 물었다. 또 "고향을 떠나도록 우리 등을 떠미는, 권력의 자리에서 인민들이 굶어 죽어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국경만 막으면 되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의 죄는 따지지 않냐"고 규탄했다.

북한정의연대는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북한 보위부와 지도부에 의한 인권탄압과 고경희 씨의 강제적 구금·실종에 관한 인권유린보고서'를 작성해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강제구금에 관한 실무반'에 접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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