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 무원칙… 禍키우기… KB 뺨치는 금융당국 내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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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의 징계대상 여부 놓고 금융위-금감원 초기부터 대립
금감원 안에서도 ‘징계수위’ 충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

“KB금융 사태는 단적인 예일 뿐이죠. 우리 금융당국은 ‘예측 가능성’이 전혀 없어요. 불과 몇 달 전에는 ‘된다’고 했다가 이제 와선 ‘안 된다’고 하고. 위(금융위원회)에서 하는 얘기, 원(금융감독원)에서 하는 얘기 또 다르고….”(한 시중은행 부행장)

최근 KB금융 사태와 관련해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도리어 키웠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사태 해결 과정에서 여론을 좇아 원칙 없이 대응한 것도 문제지만,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갈리며 당국의 신뢰를 제 손으로 깎아먹었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제재 대상자들의 잘잘못을 정교하게 가리기보다 ‘윗선’이나 정치권의 신호만 기다리는 소신 없는 관료집단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 스스로 신뢰 떨어뜨려

이번 사태의 처리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KB금융 못지않은 심각한 내분 양상을 보였다. 이런 점이 갖은 억측을 불러일으키고 당국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 많다.

처음에는 금감원과 금융위의 대립이 있었다. 5월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주 전산기 교체 문제를 신고해 금감원이 조사에 돌입했을 때 금융위 안에서는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기류가 강했다. 금융회사의 자체적인 경영 판단이 당국의 징계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처음부터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두 달간 징계수위를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자 금융위에서는 “애초에 이 사건에 발을 담근 것부터가 금감원의 실책”이라는 당국자들의 촌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금융위도 금감원의 검사업무를 감독할 의무가 있고, 제재심 과정에도 시종일관 참여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등은 금감원 내부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제재심이 6차례의 회의 끝에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 전 행장에 대한 경징계를 결정하자 최수현 금감원장은 제재심의위원장을 맡은 최종구 부원장에게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이 제재심 결정을 파기하고 문책경고로 제재 수위를 높인 다음에도 파장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금감원 은행검사국을 중심으로 ‘중징계가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쪽과 ‘당초 제재심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양분돼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 내에서는 ‘제재심 위원들이 징계를 낮춰달라는 로비를 받았다’는 루머도 퍼졌다.

○ 사태 방관하다 ‘벼락치기’ 제재

금융당국의 원칙 없는 행보도 도마에 오른다. 최 원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하겠다”며 특별검사에 돌입한 지 3주도 안돼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에게 중징계를 통보했다. 그간의 검사 관행을 봤을 때 상당히 빠른 결정으로 검사국 내부에서도 “무리수”라는 뒷말이 나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상적인 검사도 제재까지 한 달 넘게 걸리는데 상반기에 징계를 마무리하라는 지침에 따라 현장검사 이틀 만에 보고서 작성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의 이런 이례적인 강경 행보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특정인물 찍어내기’설과 배후설, 음모론 등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위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처음에는 징계의 ‘깜’도 안 된다며 사태를 덮으려 했다가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불과 석 달 만에 ‘직무정지’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리도 사건이 금융위로 넘어올 거라는 예상을 미처 하지 못했다”며 “시간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최 원장이 임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건의한 4일부터 금융위가 직무정지를 의결한 12일까지는 불과 일주일 남짓한 기간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들이 미처 사건을 검토할 충분한 시간 없이 정치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KB금융 사태는 당국이 초동대처를 제대로 못했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와 비슷하다”며 “같은 사건을 놓고 제재 강도가 이렇게 급변한다면 금융회사들이 당국의 규제 기준에 대한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정임수 기자
#KB금융#금융당국#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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