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손택균]굿바이, 마이 캡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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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균 문화부 기자
손택균 문화부 기자
알 파치노.

“어떤 배우 좋아하느냐”란 질문에 중학생 때부터 그의 이름을 댔다. ‘대부’보다는 ‘서피코’와 ‘스카페이스’에 혹했다. ‘프랭키와 자니’는 한동안의 연애교본이었다.

2주 전 로빈 윌리엄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며칠 뒤 생각했다. “왜 영화를 좋아하느냐”란 질문에, 파치노의 이름을 엮어 답할 수 있을까.

윌리엄스는 파치노와 ‘인썸니아’에 함께 출연했다. 이야기는 지루했다. 기억에 남은 건 냉혹한 변태 살인마를 연기한 윌리엄스의 얼굴을 바라보는 당혹감과 불편함이었다. 자식들을 만나고 싶어 할머니로 변장했던 아빠가, 지고지순 로맨티시스트 로봇이, 피터 팬이, 키팅 선생님이, 살인마라니.

그저 바다 건너 먼 나라 배우 한 사람이 자살했을 뿐인데 왜 마음이 아픈지. 어째서 주제넘게 미안한 기분까지 드는 건지. 아직 생활전선에 덜 들볶여 한가로운 감정의 오지랖이 남은 건지. 어이가 없었다.

“비밀을 알려줄게. 우리는 시가 예뻐서 그걸 읽거나 쓰는 게 아니야. 시를 읽고 쓰는 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지. 의술, 법, 상업, 기술은 인류가 삶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시, 예술, 사랑은 뭘까. 그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야.”

감상에 젖은 스스로를 한심스러워하면서 외신 부고기사에 링크된 유튜브 영상을 뒤적이다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는 걸 24년 만에 돌이켰다. 그와 더불어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답도 떠올랐다.

연기 잘하는 배우는 못하는 배우만큼 널렸다. 재미있는 영화도 재미없는 영화만큼 쌓이고 쌓였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배우가 멋있고 영화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10대와 20대를 보내며 무엇보다 뜨겁게 가슴을 달아오르게 한 것이 영화였기 때문이다. 학교가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폭력에 유연하게 복종하도록 훈련시키는 곳이라는 걸 깨달아갈 때, 키팅의 속삭임은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도록 마음을 붙들어 주었다.

마음을 위로하는 영화, 그런 영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배우는 드물다. 위로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정말로 위로하려면 먼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윌리엄스의 부고에 “지독하다 싶을 만큼 투명한 정직함을 연기에 얹었다”고 썼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해본 사람만이 ‘상실’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조언.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다독거림. 윌리엄스 아닌 다른 이가 전했다면 어땠을까.

그가 받은 아카데미상은 ‘굿 윌 헌팅’의 남우조연상이 전부다. ‘당신은 원래 사람 위로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한 것 아닐까. ‘인썸니아’ 이후 윌리엄스가 여러 영화에서 눈웃음을 걷어낸 건, 의무처럼 굳어진 역할이 버거워서는 아니었을까.

어떤 배우를 좋아하나. 답은 여전히 알 파치노다. 그렇다면 어떤 배우가 영화를 좋아하게 만들었나. “지금 이곳을 살아내라”고, “세상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라”고 이야기해준, 로빈 윌리엄스. 마이 캡틴.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
#로빈 윌리엄스#알 파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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