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전화, 안 합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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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번호만 13개인데… 각 부처 통합 난색

“집에 강도가 들어서 사람이 다치면 119에 신고하나요, 112에 신고하나요?”

포털사이트에 가끔 올라오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글쎄요’다. 실제로 이 질문에는 “일단 한 곳에 전화해서 상세히 상황을 설명해라” “114에 물어봐라”는 답글이 달렸다.

국내에 존재하는 주요 긴급전화는 총 13개.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범죄신고(112), 화재 구조 재난 및 응급의료 신고(119)도 있지만, 밀수사범 신고(125), 환경오염 신고(128), 마약 신고(1301) 등 다소 생소한 긴급전화도 많다. 운영 주체도 각 정부기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점은 올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드러났다. 이날 오전 8시 52분부터 30분간 해양긴급신고 전화(122)에는 한 통의 신고도 접수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소방방재청이 운영하는 119에는 이때 23번의 신고 전화가 몰려들었다. 122가 개통된 2007년 7월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신고 당사자들은 번호조차 몰랐던 셈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인지도가 낮은 긴급전화를 통합하자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안전행정부는 ‘긴급신고 통합방안 연구용역’을 공고했고 이달 중으로 연구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연구 내용에는 긴급전화 통합 기준과 대상, 외국 사례, 통합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연구용역을 마친 뒤 내년 1월경 공청회를 열고, 정부 내 회의체에 상정해 부처 간 합의를 거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론이 도출돼도 세부 시행계획과 예산이 필요한 만큼 긴급전화 통합 방안은 이르면 2016년경에나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각 부처에서 여러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112와 119에 각각 신고하면 범죄인지 재난인지 추정해 전문성을 갖고 대처할 수 있지만, 번호가 통합되면 그게 안 된다”고 말했다.

일례로 112에 “치킨 좀 갖다주세요”라는 전화를 건 사람이 있었다. “잘못 거셨다”고 말했지만 “맞아요. ○○호로 치킨 보내주세요”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이때 경찰은 그가 범죄자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갑자기 말없이 전화를 끊는 신고자도 비슷한 상황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번호가 통합되면 이런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119를 관할하는 소방방재청도 난색을 표하긴 마찬가지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긴급성을 요하지 않는 전화는 통합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하지만 112와 119는 전문성과 신속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통합하면 사건 대응을 하는 데 좋은 방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선 단일번호를 통해 신고자를 적재적소로 연결해준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신고자가 알아서 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해야 해 불합리한데, 이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112와 119는 조직이나 기능도 다르고 상황도 다른데 한 곳으로 통합하는 것은 말이 안 맞다”며 “신고전화를 통합했다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별도로 운영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현재 부처 간 협의에서는 112와 119를 제외한, 인지도가 낮은 번호를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행부 관계자는 “용역 결과가 나오면 국민들에게 여러 가지 통합 방안과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이샘물 evey@donga.com·강홍구 기자
#긴급전화#11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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