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후쿠시마 제2원전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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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가른 위기관리’
10km 떨어진 제1원전 붕괴 재앙속 ‘알려지지 않은 기적’

‘후쿠시마’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제1원전) 사고를 떠올린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해안에 덮친 지진해일(쓰나미) 때문에 세 번의 노심용해(멜트다운)가 일어나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유출됐다. 지진과 침수로 인해 원전의 냉각장치를 가동시키는 전력이 끊겼고 관리자와 직원들이 이를 수리하지 못해 사고를 막지 못했다. 전 세계인이 원전 폭발 장면과 하늘을 뒤덮은 회색 연기 기둥을 지켜봤고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그런데 인근에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또 다른 원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1원전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는 후쿠시마 제2원전이 있다. 이 시설 역시 쓰나미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직원들이 비상 동력원을 찾아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데 성공해 제1원전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었던 제1원전과 제2원전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하버드경영대학원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합동 연구진은 두 원전을 소유한 도쿄전력(TEPCO)의 상세 보고서, 그리고 여러 자료와 책임자 인터뷰 등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제2원전의 생존은 “나를 따르라”는 식의 강력한 리더십이나 직원들의 영웅적인 희생정신 때문이 아니었다. 직원들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게 하고 또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당황하지 않고 계획을 수정해 나갔던 원전 소장의 침착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한국어판 7·8월 합본호에 실린 후쿠시마 제2원전의 위기관리 사례를 소개한다.

○ 한 발 물러서서 파악하기

지진은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발생했다. 책상 밑에 숨었던 제2원전의 마스다 나오히로(增田尙宏) 소장은 흔들림이 약해지자 모든 작업자에게 관리동 건물 가장 높은 층에 있는 비상대응센터(ERC)로 모이라고 명령했다. 지진이 발생한 지 20분이 조금 지났을 때 일본 기상청이 첫 번째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구도 대재난이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발전소 시설이 최대 5.2m의 침수상황에도 버틸 수 있도록 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3시 22분에 몰려들기 시작한 바닷물은 약 17m 높이까지 차올랐다. 몇 시간 후 바닷물이 빠지고 나서 확인해 보니 해수면 12m 높이에 지어진 원자로 4기 중 3기가 침수돼 냉각기능이 마비된 것을 알게 됐다. 쓰나미가 오기 전에 미리 원자로 가동을 중지시켰지만 노심 내부의 뜨거운 연료봉들은 열을 계속 방출하고 있는 상태였다. 냉각을 하지 못하면 노심이 파괴되거나 격납용기가 깨져 방사성 증기가 누출될 위험이 컸다.

무엇보다 상황을 확실히 파악조차 할 수 없어 불안했다. 비상대응센터에 모여 있는 직원들을 다시 원자로로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직원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힌 쓰나미를 겪고 당황한 데다 여진도 계속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원전 인근에 사는 가족들의 사고 소식으로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8명이 가족을 잃고 23명은 집을 잃었다. “내가 요청한다고 해도 우리 팀이 현장에 가려고 할지, 그곳에 사람들을 파견하는 것이 안전한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라고 마스다는 회고했다.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열정적인 연설을 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대신, 비상대응센터 한 구석에 화이트보드를 놓고 여진의 빈도와 규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직원들 스스로가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맞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오후 10시가 돼서야 마스다는 4기의 원자로를 맡은 팀 리더들을 불러 10명씩 밖으로 보내 손상 정도를 조사하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아무도 거부하지 않았다.

○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2011년 3월 원자로가 폭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 이곳에서 약 10km 남쪽에 있는 후쿠시마 제2원전 역시 지진과 침수 피해를 입었지만 관리자와 직원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참사를 막았다. 동아일보DB
2011년 3월 원자로가 폭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 이곳에서 약 10km 남쪽에 있는 후쿠시마 제2원전 역시 지진과 침수 피해를 입었지만 관리자와 직원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참사를 막았다. 동아일보DB
네 팀은 원자로의 작동하는 부분과 작동하지 않는 부분을 확인해 오전 2시에 비상대응센터로 복귀했다. 도쿄전력 본사와 일본 자위대의 지원으로 교체 부품들이 도착했지만, 전력이 끊겨 냉각장치의 가동이 멈춘 세 개의 원자로를 아직 전기공급이 가능한 건물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총 9km 길이의 케이블을 연결해야 했다.

마스다는 계속 화이트보드를 이용해 직원들과 정보를 공유했다. 원전 시설의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놓고, 복구 전략을 작성하고, 새로운 정보가 생길 때마다 공개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이어졌다. “새 모터를 설치하려 했지만 쓰나미로 인한 잔해가 너무 많아 현장 가까이에 접근할 수 없었다. 불도저로 쓰레기를 제거해야 했지만 불도저가 없었고, 불도저가 있었더라도 운전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용케 모터를 갖다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트럭에서 모터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또 겨우 모터를 내려놓았는데 이를 빌딩 안에 들여놓는 방법도 몰랐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작업 방침을 수정해 알렸다.

더 큰 위기도 있었다. 마스다는 노심의 압력이 가장 빠르게 높아지고 있던 2호 원자로부터 전력을 공급하라는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고, 엔지니어들도 그 명령에 따라 케이블과 기타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10km 떨어진 제1원전에서 방사능 물질의 유출이 시작돼 피폭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마스다는 2호기보다 1호기가 더 취약하다는 걸 알게 됐다. 계획을 수정하면 밤을 꼬박 새우며 2호기에서 작업하던 엔지니어들이 화를 낼 만도 했지만 이들은 조용히 소장의 명령을 따랐다. 상황이 극도로 불확실하며 언제든 작업 순서가 바뀔 수 있음을 마스다가 반복해서 일러줬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3월 14일 오전 1시 24분, 우여곡절 끝에 케이블이 모두 설치됐고 1호기 냉각장치가 재가동됐다. 증기 압력이 허용 수치를 넘기기 불과 두 시간 전이었다. 이어 그날 오후까지 나머지 두 기의 원자로도 차례로 전력이 연결되며 제2원전의 위기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 ‘센스메이킹’의 승리

제2원전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모두가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고 또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는 과정을 미국의 조직이론가인 칼 와익은 ‘센스메이킹(의미화)’이라고 불렀다. 마스다 소장은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우고, 또 상황에 맞게 계획을 수정하는 모습을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직원들에게 공개했다. 이런 리더십은 조직이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위기가 닥치면 리더들은 부하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안정감을 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만 믿어라’ ‘다 잘될 거다’는 식의 지키지 못할 연설을 하는 경향이 있다. 마스다는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 스스로 어떤 위험에 빠져 있는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제2원전을 살려낸 그는 2014년 4월부터는 제1원전의 해체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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