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여름 휴가 트렌드 A to Z… 어디로 떠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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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르고, 남다르게

지금 지구촌 여행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그걸 가늠하자면 국제관광박람회(ITB)를 들여다보는 게 가장 빠르다. ITB는 매년 3월 독일의 베를린에서 닷새간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관광 컨벤션. 올 ITB 베를린에서는 관광 분야 전문컨설팅그룹인 IPK 인터내셔널이 지난 2년간 통계를 중심으로 세계 관광의 흐름을 분석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걸 살펴보니 △중국인 여행자(지출액 세계 1위, 1박 이상 여행 세계 2위, 총 숙박일수 세계 4위)의 부상과 △대등(對等)연결여행 활성화 △젊은 여행자의 도약 △플래시패커의 출현 △모바일기술 활용 증대 △아프리카로 떠나는 대가족여행 등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대등연결’이란 카우치서핑(내 집의 소파나 빈방에 무료로 재워주기)이나 카셰어링(시간단위로 자동차 빌리기)처럼 이용자 및 제공자 모두 ‘신세’나 ‘접대’라기보다는 ‘대등한 관계’로 만나 서비스와 대가를 교환하는 환대(Hospitality·관광)산업의 새로운 흐름이다.

국제관광시장에 중국인의 약진은 놀랍다. 급증한 중국인 여행자로 인해 지구촌 관광시장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트렌드의 역주행 현상 때문이다. 이제껏 관광 트렌드는 구미의 ‘성숙된 시장’에 의해 주도됐다. 그들이 다수여서다. 스파와 리조트, 섬, 트레킹, 자연 속 휴식 등 기존 트렌드는 모두 ‘건강, 휴식, 도피(escape), 소통, 지속 가능성’이란 선진적 가치에서 나왔다.

그런데 중국인이 다수를 차지한 지금은 어떤가. ‘다수=트렌드’의 등식이 더는 성립하지 않는다. ‘떠오르는 시장’ 중국이 유적순방 그룹패키지의 ‘고전적 여행’을 답습해서다. 그래서 단언컨대 여행 트렌드는 여전히 구미에 의해 리드될 것이다.  

▼ “인류 DNA를 찾아서” 숲-산-섬-물… 낯설지만 그리운 곳으로 ▼

유적지 순방 패키지 관광 줄고… 휴식 찾아 떠나는 자유여행 늘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떠나던… Y세대 청년들 ‘모바일’로 무장
좀 더 싸게 좀 더 멀리 영역 넓혀


여행의 새 지평, ‘대등연결’

중국인의 해외여행 급증으로 판도가 바뀌고 있는 지구촌 여행시장에서도 여전히 트렌드를 주도하는 지역은 유럽과 미국.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에 기반을 둔 대등연결과 플래시패커가 가장 두드러진다. 왼쪽 사진부터 대다수 관광객이 중국인인 마카오의 붐비는 골목, 에어비앤비로 찾아낸 이색 숙소 ‘트리하우스’, 작은 백팩 차림에 모바일로 무장한 플래시패커의 모바일 서핑 모습(싱가포르).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대등연결(Peer to peer)은 컴퓨터 용어다. 같은 능력의 컴퓨터를 대등하게 연결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게 여행 분야에 접목된 것은 여행이 좀 더 가치를 추구하면서다. 내 것을 나누는 공유의 철학, 화석연료의 부산물인 이산화탄소 감소란 사회·경제적 가치, 타 문화권과의 소통을 통한 지구촌 형제애, 한정된 자산의 이용 극대화를 통한 ‘어머니 지구 살리기’ 같은 지속 가능성이 여행과 결합된 가치다. 그럼에도 이 대등연결에 잠재한 최고의 가치는 역시 여행에 내재한 ‘즐거운 만남’이다.

대등연결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공은 카우치서핑(www.couchsurfing.com·2004년)과 에어비앤비(www.airbnb.co.kr, www.airbnb.com) 같은 ‘소셜 숙소’다. 카우치서핑은 내 집의 빈 방이나 소파(이걸 미국서는 ‘카우치’라고 부른다)를 무료로 빌려주는 것. 10만 개 도시에 회원이 700만 명이나 된다. 에어비앤비는 ‘베드 앤드 브렉퍼스트(Bed and Breakfast)’의 약자로 비앤비를 모체로 한 새로운 숙박 예약 사이트다. ‘주인장이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숙소 소개란 점에서는 비앤비와 같지만 내용은 사뭇 다르다. 간판까지 붙이고 영업하는 비앤비와는 달리 이곳 숙소는 지구촌의 평범한 가정부터 트리하우스(나뭇가지 위에 지은 공중 집), 대저택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이용자가 장소, 타입, 가격을 입력하면 마땅한 곳을 제시하고 이후엔 대등연결을 통해 주인과 이용자가 문자메시지로 소통한다. 이용자는 그 과정에서 이미 다녀간 여행자의 이용 후기와 주인장의 프로필을 참고한다. 그런데 특별한 것은 오늘은 이용자지만 내일은 내가 주인이 되어 숙소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내 집을 에어비앤비에 숙소로 등록하는 것인데 이 방식은 카우치서핑도 마찬가지다.

에어비앤비의 숙소는 약 80만 개. 190개국 3만5000개 도시에 산재한다. 이용자는 연간 1500만 명. 2008년 문을 연 에어비앤비가 이렇듯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대등연결이란 사회적 가치다. 주인과 손님이 그 만남을 통해 삶과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는 점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해외여행을 즐기는 한국인도 크게 늘고 있다. 최근 1년간 390%로 늘었다. 외국인의 한국 방문도 비슷해 1년 전에 비해 3배가 됐다. 현재 한국에는 4400개 숙소가 등록돼 있다(서울에 3500개).

여행에서 이런 공유 경제는 그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자동차 대여가 대표적으로 카셰어링 사이트 집카(www.zipcar.com)의 성공에 힘입어 블라블라카(www.blablacar.com) 같은 ‘유료동승’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또 바야블(www.vayable.com)은 로컬가이드 분야에 대등연결을 도입했다. 뉴욕 뒷골목 음식투어나 파리 야경촬영 투어가 그 예.

‘Y세대’ 청년여행자의 변신

청년여행자(15∼29세)는 어느 나라건 성향이 비슷하다. 좀 더 자주 여행하고, 좀 더 여행기간이 길며, 늘 새로운 곳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여행시장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은 낮았다. ‘싸구려 여행’과 ‘짠돌이’로 상징되는 백패킹(Backpacking·배낭여행)을 주로 하기 때문에 소비력이 떨어져서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그 동향을 밝혔다. 2012년 세계 관광시장에서 청년여행 매출이 1조8200억 달러(한 회 평균 910달러)로 크게 늘었다. 한 번 여행에 지출하는 돈이 900달러 선을 돌파한 것도 처음. 청년여행 시장의 주무대는 지구촌 청년여행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럽. 2011년 연간 9300만 회는 유럽 여행시장 총매출의 23%다(IPK 보고).

세계청년교육여행연합(WYSE)은 최근의 청년여행 스타일이 과거 백패킹과 아주 다르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 특징은 단기 여행으로 기간은 주로 7박 이하다(66%). 두 번째는 늘어난 씀씀이로 평균 900달러를 지출한다. 세 번째는 자신을 ‘백패커’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투어리스트’라 부르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그 호칭은 2002년 15%이던 게 지난해엔 두 배가 됐다. 그 대신 백패커는 10년 전 30%에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청년여행자는 독일(여행 횟수 1700만 회) 프랑스(790만 회) 영국(730만 회) 순으로 많다. 새로운 트렌드의 첨단을 걷는 청년여행자를 WYSE의 데이비드 채프먼 사무총장은 ‘Y세대’라 부르며 이들이 관광시장에서 새로운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플래시패커의 등장

플래시패커란 백패커의 상대 개념으로 백팩(배낭) 대신 ‘플래시팩(Flashpack)’으로 무장한 청년여행자를 뜻한다. 플래시팩이란 스마트폰 태블릿 고프로(GoPro·액티비티 촬영용 소형 핸즈프리 영상촬영장치) 등 모바일 기기 전부를 말한다. 이 장비는 여행 중인 자신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알리기 위한 것. 따라서 플래시패커는 곧 올 타임 커넥티드(All time connected·언제 어디서든 인터넷과 통신망으로 연결된다는 뜻)’ 여행자와 동의어다.

채프먼 사무총장은 이들의 특징을 이렇게 열거한다. ‘하이테크 기기 사용에 익숙하며, 늘 SNS에 연결돼 있고, 기차나 버스를 주로 이용하긴 해도 저가 항공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백패커보다는 호텔 이용 빈도가 높아 호텔과 호스텔, 대등연결의 소셜 숙소 이용률이 비슷하다. 채프먼 사무총장은 137개국의 35세까지 청년여행자 3만4000명을 10년간 조사했더니 무작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백패커는 절반 이하(45%)로 줄어든 반면에 언어연수와 수학, 취업체험, 봉사활동 여행자는 크게 늘어났다(55%)고 밝혔다.

모바일, 피할 수 없는 선택

요즘 여행에서 모바일은 가방에 필적하는 필수 도구다. 여행 준비는 물론이고 여행 도중, 그리고 여행 후에도 모바일은 여행의 일부다. 이 때문에 소셜미디어 자체가 여행정보 수집의 주요 수단이 됐다. 모바일 기기와 소셜미디어가 이미 여행자의 신체 일부가 됐다고 할 정도다. 여행 관련 산업에서도 모바일 기반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된 지 오래. 2013년 지구촌 여행동향 관측포럼이 그 주제를 ‘모바일 기반 구축’으로 정한 것도 그런 변화를 잘 말해준다.

그렇지만 모바일은 아직 여행 정보 수집에만 유용한 실정이다. 결제수단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조사에 따르면 유럽 미국 일본에서 모바일 결제는 2% 수준. 아시아 국가는 이보다 높아 중국이 4% 선.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호텔의 모바일 기반 역시 미흡해 홈페이지를 모바일로 제공하는 곳이 2010년 2.9%에서 늘어났다고는 하나 아직 14.1% 수준이다. 그나마 아시아에서나 그렇다. 숙박비 결제도 컴퓨터로 결제한 것을 24시간 내 모바일로 확정 통보해주는 정도. 그런 모바일 서비스도 전 세계 호텔의 70%에 그치고 있다.

한편 구미에선 여행자의 75%가 여행계획을 소셜미디어에서 정보를 얻어 세우고 있는데 이 역시 중국(95%)과 브라질(84%)에는 뒤진다.

가족여행지로 부상한 아프리카

최근 관광시장에서 두드러진 동향이라면 그 중심이 구미에서 브릭스 국가와 중동으로 옮겨가는 현상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변화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조부모를 동반한 3세대의 ‘대가족 여행’이 늘고 있다는 것. 그 여행의 목적지로는 아프리카가 대세다. 아프리카를 찾는 이유는 그동안 ‘라이온킹’ ‘마다가스카’ 등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프리카가 어린이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됐기 때문. 아프리카 여행은 사파리투어가 주종이다. 가장 인기 있는 목적지는 말라리아 감염 우려가 없는 남아공 등 대륙 남부지역과 케냐 잠비아 탄자니아 말라위 등.

영국 ‘이매진 아프리카’(www.Imagineafrica.co.uk)의 영업부장 벤 모리슨은 “지난 3년간 가족단위 아프리카 사파리투어 예약은 매년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중에 중국인이 두드러지는데 중국은 남아공의 네 번째 고객 국가. 2012년 남아공을 찾은 중국인은 13만2000명이고 2017년엔 18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남아공의 게임리저브(Game Reserve·사파리공원)와 사파리로지(숙박시설) 중엔 3세대 대가족 여행객을 수용하기 위해 시설 개·보수를 하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

아프리카 사파리투어의 새로운 트렌드 중 하나는 어린이 마케팅. 대가족 여행에서 파생된 것으로 어린이 고객 맞춤서비스를 추가한 스타일의 사파리 여행사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아프리카 온 풋’(www.africaonfoot.com)과 ‘라이노 아프리카’(www.rhinoafrica.com)는 어린이를 위한 음식과 캠핑, 숙소와 야외활동을 별도로 제공하고 있다.  

▼ “실속 SNS를 통해서” 여행정보 공유하고 숙소-차도 나눠 써 ▼

‘어떤 여행 원하세요?’ 물었더니
“사이판서 5만원대 방 빌려 독서”… “네팔서 히말라야 트레킹”
“아들과 둘이서 자전거 여행”… 가족 중심-인문학투어가 요즘 추세


휴가여행을 관광으로 소진하는 건 이미 구태다. 요즘 트렌드라면 평소 해온 일상을 최고의 이벤트로 확대 및 확장시키는 데 여행을 그
 기반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스위스 알프스에서의 트레킹(왼쪽 사진)과 인문교육원의 인문학투어 중 하나인 정산샤오중 차창에서 
중국차를 시음하는 모습.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휴가여행을 관광으로 소진하는 건 이미 구태다. 요즘 트렌드라면 평소 해온 일상을 최고의 이벤트로 확대 및 확장시키는 데 여행을 그 기반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스위스 알프스에서의 트레킹(왼쪽 사진)과 인문교육원의 인문학투어 중 하나인 정산샤오중 차창에서 중국차를 시음하는 모습.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지인그룹에 질문을 던졌다. 한 달 후 2주간 휴가를 떠난다면 어떤 여행을 하고 싶으냐고. 물론 감당할 예산범위 내에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 한정했다. 그랬더니 30여 명이 계획을 보내왔는데 그리도 다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엔 딱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여행사의 그룹패키지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요즘 한국 여행자의 트렌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연코 ‘휴식과 자유’이고 주제는 ‘가족’과 ‘평소 관심사’라고 말할 수 있다.

휴가여행, 일상 최고의 이벤트

기자의 SNS그룹이 보내온 계획. 과연 어떨까. 한 부부는 에어비앤비(www.airbnb.co.kr)를 통해 사이판에서 50달러 안팎의 숙소를 빌려 산책하고 책을 읽다 오겠다고 했다(예산은 300만 원). 부인과 함께 1주는 뉴질랜드에서 스키 타고 나머지 1주는 하와이에서 휴식하며 쇼핑하기, 캐나다 서쪽 밴쿠버에서 동쪽 몬트리올까지 자동차여행 하기, 혼자 히말라야 트레킹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방콕시내 카오산로드의 게스트하우스에서 1주를 보낸 뒤 반얀트리에 묵으며 다시 1주간 매일 마사지 받기, 딸 돌봐주는 친정부모 모시고 런던 6박 파리 6박의 관광, 프로방스(프랑스)에서 주택 빌려 주민과 어울려 과일도 따고 동네 레스토랑 기웃거리며 2주간 살아보기, 부부가 하와이나 동남아에서 스쿠버하고 남은 1주는 양양(강원도)에서 서핑 겸 캠핑하기, 혼자서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에 참가해 동참한 뭇 외국인과 어울리기, 혼자 빅아일랜드(하와이)에서 물놀이와 트레킹을 하고 나머지 기간은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 머물며 매일 밤 쇼 관람하고 그랜드캐니언 다녀오기, 중학생 아들과 단둘이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2주간 자전거여행 다녀오기도 있었다.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수단, 여행

인도네시아 여행 중에 촬영한 신중완 씨 가족 기념사진.
인도네시아 여행 중에 촬영한 신중완 씨 가족 기념사진.
이걸 보면 대략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첫째는 평범한 휴식여행이라도 그 주제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걸 난 ‘개성 만점의 여행’이라 풀이한다. 둘째는 부부나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역시 부부가 여행 중에 ‘같은 것을 함께 즐긴다’는 데 방점이 있다. 셋째는 휴가를 평소 즐기는 레저활동의 연장으로 삼는 ‘액티비티(Activity) 여행’이다. 마지막은 여행의 계획과 실행 등 거의 모든 단계에서 인터넷을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여행 이전과 이후는 물론이고 도중에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행자는 지인과 연결돼 그 현장과 경험을 함께 공유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 중에서도 ‘가족과 함께’와 ‘항상 연결(All time connected)’이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트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면 가족이 핵가족화에 그치지 않고 핵분열 하듯 뿔뿔이 흩어지는 요즘, 여행은 가족의 가치를 높여주는 새로운 수단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SNS를 통한 ‘항상 연결’도 마찬가지다. 홀로 낯선 곳을 헤매는 중에도 사회적 소속감을 잃지 않으면서 평소 보여줄 수 없던 자신의 다른 모습과 내재한 가치를 구성원에게 표출시킨다. 이는 SNS 세상에서 가능한 자기표현의 또 다른 수단이다.

여행, 내 가족의 모든 것

한의사 신중완 씨(56·성모한의원 원장) 부부는 남매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20년 동안 매년 학교 방학을 이용해 국내외로 가족여행을 해 왔다. 그리고 매번 비디오카메라로 여행의 전 과정을 촬영하여 시와 글, 사진까지 넣어 편집해 비디오앨범을 만든다. 이는 훗날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념품. 부부는 복사본을 만들어 남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있다.

학창시절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신 씨에게 가족은 최고의 가치이자 전부. 그런데 정작 자신은 부모형제 등을 추억할 기억과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게 지속적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올여름 신 씨는 가족여행 패턴을 바꿨다. 자신이 주도하던 걸 성인(30, 28세)이 된 자녀에게 맡긴 것이다. 그래서 올여름 휴가는 취업 후 첫 여름휴가를 맞는 딸에게 맡겨 짧은 제주도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특별하게도 우리 가족에겐 각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모티브가 되어 왔다. 그래서 난 우리 여행에 행운의 여신이 늘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가슴에 담아 두었던 묵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진심을 통해 서로 이해와 사랑이 깊어져서다. 여행이란 그 어떤 것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기막힌 이벤트다.”

여행은 그 자체로 인문학이다.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기원한 인문학은 당시 자유시민이 자기 생각과 권리, 주장을 알리고 관철하며 설득하기 위해 공부한 지식이 그 요체다. 여행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문학의 핵심인 문학 역사 철학을 그 현장에서 체험하고 알게 되는 적극적인 행로다. 따라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문학의 길을 걷는 것이다. ‘관광(觀光)’이라는 우리 말 자체도 그렇다. 지금은 ‘주마간산형 구경’으로 전락했지만 조선중기의 ‘관광’이란 조어(造語)에 담긴 선조의 뜻은 고귀하기 이를 데 없다. ‘선현의 빛나는 업적을 직접 찾아가 보고 느끼고 깨치는 여정’이어서다.

최근 여행에 그런 본뜻을 추구하는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근래 인문학 열풍에 힘입은 새로운 트렌드로 ‘관광’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신선한 흐름이 아닐 수 없다. 그 흐름은 주로 각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 중 3, 4일간의 수학여행이 주도했다. 그게 최근엔 사회단체의 중년(주로 40, 50대 여성)과 50∼70대 은퇴자 사이에서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이들의 인문학여행은 주로 소속 그룹의 공동관심사에 집중된다. 가장 최근에 살핀 사례는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KACE) 산하 인문교육원(대표 박재희)이 주관한 중국 푸젠 성 우이산 중국차(茶) 여행이었다.

우이산은 중국 10대 명산 중 하나로 다훙파오(大紅袍)와 진쥔메이(金駿眉)라는 중국 최고의 명차 산지. 이 단체 회원 18명(서울 제3지구)은 지난달 5일 일정으로 다훙파오의 모수(母樹)가 자라는 수이린 계곡도 찾고 다훙파오와 육계 수선 백계관 등 예닐곱 종류 우이옌차(武夷巖茶)의 차나무도 직접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 또 국립공원 지역 안 해발 1000m 산속에 자리 잡은 정산샤오중(正山小種) 차창(茶倉·차를 만드는 곳)도 방문해 세계 최고의 홍차로 알려진 진쥔메이 차도 맛봤다.

인문교육원에서 차 공부를 시키는 이유에 대해 박재희 대표(군자학교 훈장)는 이렇게 밝힌다. “인간의 아름다운 패턴을 위해서는 그 본성이 최대한 발현돼야 합니다. 문학 철학 역사 예절 차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말이지요.” 이번에 중국차 여행을 다녀온 오미화 씨는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케 한 좋은 여행이었다”면서 “그간 나의 게으름으로 세세하게 살피지 못했던 차에 대한 많은 부분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런 인문학여행이 앞으로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내다본다. 745만 명으로 추산되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 개시가 그 계기다. 이들은 아주 건강하며 활동력이 강한 데다 지적 호기심까지 왕성하다. 또 기대수명도 100세를 지향하는 아주 특별한 세대다. 그래서 여행을 단순히 재밋거리보다는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2차 성장’의 도구로 삼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에게 인문학여행은 좋은 디딤돌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여름휴가#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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