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자, 하드웨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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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 2.0시대’ 美 실리콘밸리서 제조업 벤처 잇단 대박

벤처기업의 성지(聖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액션 캠코더(몸이나 기구에 부착해 역동적 모습을 찍는 카메라)’ 제조사 ‘고프로’다. 2004년 창업자 닉 우드먼이 ‘내 서핑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싶다’는 스스로의 욕구에 착안해 설립한 고프로는 지난달 26일 나스닥에 상장해 4일 만에 주가가 103% 상승하는 대박을 쳤다. 15일 현재도 공모가(24달러)보다 약 54% 높은 37달러의 주가로 시가총액은 46억 달러(약 4조692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 9억8600만 달러의 네 배가 넘는 수치다.

네스트 온도조절기
네스트 온도조절기
○ 직원 100명의 제조사, ‘몸값’은 조(兆) 규모

애플 인텔 등 소수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장악한 실리콘밸리에서 수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신생 하드웨어 제조사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자체 생산설비와 유통망 없이 아이디어와 기술력만으로 무장한 소규모 기업들이 상장이나 인수합병(M&A) 시 천문학적 몸값이 매겨지는 것이다.

올해 1월 구글이 인수한 가정용 온도조절기 제조업체 네스트는 창업한 지 4년 만에 직원 300여 명에 매출 3억 달러에 오른 전도유망한 기업. 구글은 네스트에 32억 달러(약 3조2640억 원)를 질렀다. 이 M&A는 “벤처 기업의 조 단위 매각은 소프트웨어 분야만 가능하다는 실리콘밸리의 통념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페이스북이 3월 20억 달러(약 2조400억 원)에 인수한 가상현실 기기 제조사 오큘러스VR 역시 직원이 100여 명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주변 기기와 웨어러블(wearable·입을 수 있는) 기기를 생산하는 조본은 지난달 투자 유치를 할 때 33억 달러(3조600억 원)의 기업 가치가 매겨졌다.

○ ‘하드웨어 2.0’ 시대…한국은 아직 뒤처져

이처럼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우선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기술(IT)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스마트폰이라는 하나의 ‘그릇’에만 담을 수 없게 됐다는 것. 그릇이 넘친다는 뜻이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스마트폰으로 집중됐던 하드웨어 기능들이 다시 다양한 기기들로 분화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이유는 바뀐 하드웨어 생태계다. 신생 하드웨어 기업들은 전통적 제조사가 걸어온 길과는 달리 마치 소프트웨어 기업처럼 아이디어와 기술력만 있으면 자금을 모으고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웨어러블 기기 제조사 페블은 2012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불특정 다수의 투자를 유치하는 플랫폼) ‘킥스타터’를 통해 1000만 달러가 넘는 창업 자금을 마련했다. 아마존을 비롯한 오픈마켓의 활성화는 판로(販路) 개척의 어려움을 대폭 줄여준다.

미국 IT 전문 미디어 테크크런치는 “마치 소프트웨어처럼 쉽게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게 됐다”며 “‘하드웨어 2.0’ 시대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향후 3D 프린터가 활성화되면 아이디어 기반 신생 제조사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IT 벤처기업들이 스마트빔(스마트폰용 빔프로젝터), 체외진단기기, 비콘(실내위치기반 서비스 기기) 등 다양한 하드웨어 제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이동통신사와 같은 대기업과 연계한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사실상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나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에서처럼 스스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벤처기업이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면 인수나 투자보다 ‘우리가 팔아줄 테니 우리하고만 일하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하드웨어#실리콘밸리#제조업#벤처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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