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새는 잠수복, 이게 한국구조체계 현주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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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현장 봉사… 경력 37년 산업잠수사 구진옥씨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산업잠수사 구진옥 씨. 구 씨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과 비교해 구난구조 시스템은 너무나 낙후돼 있어 놀랐다” 고 전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산업잠수사 구진옥 씨. 구 씨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과 비교해 구난구조 시스템은 너무나 낙후돼 있어 놀랐다” 고 전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국내외에서 수많은 잠수 경험을 했지만, 세월호 현장의 조건은 최악입니다.”

전남 진도군 해역에서 세월호 수색 잠수사들의 안전 업무를 맡았던 산업잠수사 구진옥 씨(58)는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수사들의 악전고투는 눈물 없인 볼 수 없어요.”

잠수 경력 37년의 구 씨는 동남아시아의 해상 유전지대에서 유전 설비를 관리하는 잠수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참사 현장으로 달려가 보름간 자원봉사를 했다. 주로 잠수사들과의 통신을 담당하고 잠수병을 막는 장비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

소조기가 시작되기 직전 현장에 도착했다. 조류가 강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대형 홍수가 난 것처럼 물살이 거셌다. 선체가 침몰한 맹골수도(孟骨水道)는 강한 조류와 탁한 시계(視界)로 악명이 높은 곳. 게다가 수온은 12도 안팎이었다.

“다들 벌벌 떨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20분만 물속에 있어도 입술이 새파래지죠. 그런데 어떤 해군 잠수사는 물이 다 새는 잠수복을 입고 작업을 하더군요.”

구 씨는 “해외 잠수사들은 이런 낙후된 환경을 보고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다”고 했다.

“외국인 동료들이 세월호 보도 사진을 보고 연락을 해 와요. 어떻게 한국 같은 나라에서 그렇게 열악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세월호 현장의 잠수 장비나 방식은 저개발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입니다.”

구 씨가 해외에서 일하던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그의 잠수복은 단순히 몸만 젖지 않게 하는 잠수복과 달랐다. 얼굴을 완전히 감싸는 헬멧에 조명과 카메라가 달려 있고, 잠수복 안쪽으로 따뜻한 물이 흘러 물 속에서도 추운 줄 모르고 작업한다고 했다.

장비만 문제가 아니다. 구 씨는 “수심 40m가 넘는 곳에서 왜 심해 포화 잠수 장비를 활용하지 않는지 의아하다”며 잠수 방식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공기로 호흡하는 스쿠버 잠수로 수심 30m 이상에서 작업하는 건 한마디로 목숨을 건 행위라는 것. 공기 중의 질소가 혈액 흐름을 막아 잠수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잠수사 이광욱 씨도 결국 이 잠수병으로 숨졌다.

“잠수병 위험 때문에 공기 호흡 방식으로는 수심도 30m로, 잠수 시간도 30분으로 제한합니다. 그런데 해저와 맞닿은 세월호 선체 좌현까지 진입하려면 47m까지 내려가야 됩니다. 위험하죠. 이럴 때는 질소를 뺀 가스로 호흡하는 포화 잠수를 해야 합니다.”

심해에서 장시간 일을 해야 하는 산업 현장에서는 포화 잠수 장비가 동원된다. 헬륨과 산소 혼합 가스로 호흡하는 밀폐된 체임버(chamber)에서 수심과 압력을 같게 유지한 뒤 다이빙벨을 통해 목표 수심으로 이동하면 잠수사는 깊은 바다에서도 최장 6시간까지 연속 작업을 할 수 있다.

우리 해군과 해경도 수백억 원대의 포화 잠수 장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활용하지 않을까.

“현장에서 만난 해경 관계자에게 왜 포화 잠수 장비를 활용하지 않는지 물었는데, 전문 인력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비싼 장비도 들이고 해외로 연수를 보내 훈련도 시켰는데, 지속적으로 팀을 운영하지 않아서 장비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거죠.”

구 씨는 현장의 수색 요원과 잠수사들이 악조건에서 고생한 것은 열악한 조난구조 체계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세월호 같은 참사가 또 벌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며 “이번 기회에 포화 잠수 같은 첨단 설비와 전문 인력을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일 해경이 해체되는 정부조직 개편 방안이 발표됐다. 구 씨는 함께 고생하던 현장의 해경 잠수 요원들을 걱정했다.

“정부가 전문적인 조난구조 인력을 양성하지 않아 벌어진 사태인데, 현장의 군경 잠수 요원들까지 주눅이 들어 있어요. 그들도 수십 구의 훼손된 시신을 보곤 밤잠도 못 잡니다. 그러면서도 유족 앞에서는 빨리 구하지 못했다는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도 못 들지요. 내가 ‘고생한다’고 했더니 한 해경이 복받쳐서 울먹거리더군요.”

구 씨는 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고생한다”는 따뜻한 격려라고 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구진옥#세월호#잠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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