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당국 “머리숙여 사과” 신속보도… ‘세월호 파문’ 의식한듯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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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23층 아파트 붕괴]



북한 당국이 18일 평양시 평천구역의 아파트 붕괴 사고(13일)에 대해 주민에게 사과하고, 이를 신속히 보도한 배경이 주목된다. 김정은 체제에서 간헐적으로 보여온 ‘공개 정책’의 일환으로 주민 달래기라는 관측과 세월호 참사 이후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를 겨냥한 ‘남남(南南) 분열용 쇼’라는 추론 등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자연재해가 아닌 사고에 대해 이처럼 신속히 책임자 사과까지 보도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 北, ‘사고 피해’보다 ‘사과 내용’만 크게 보도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사고 원인 △사망자와 부상자 수 등 구체적 내용과 피해 규모를 밝히지 않았다. 매체들은 “감독통제를 (똑)바로 하지 않은 일군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엄중한 사고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났다”고만 했다. 이어 “사고 발생 즉시 국가적인 비상대책기구가 발동돼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사고 현장을 정리하기 위한 긴장된 전투가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2004년 4월 평안북도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 때 사망자 150여 명, 부상자 1300여 명이라고 인명피해를 보도했지만 사과 보도는 하지 않았다. 2010년 김영일 당시 내각 총리가 평양시내 인민반장 수천 명 앞에서 화폐개혁의 실패 문제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관련 보도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 사고에서 북한 당국의 ‘사과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다. 최부일 인민보안부장(한국의 경찰청장 격)은 17일 아파트 사고의 피해 가족과 평양 시민들을 만나 “이 죄는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으며 용서받을 수 없다”며 허리를 90도로 접어 인사했다. 올해 2월 인민보안부장에 임명된 최부일은 공병부대인 인민내무군을 총괄 지휘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무너진 아파트 건설을 담당한 인민내무군 장령(장성) 선우형철은 “평양 시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통신은 “경애하는 원수님(김정은)께서 사고에 대해 보고받으시고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여 밤을 지새우시며 당과 국가, 군대의 책임 일군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사고 현장에 나가 구조전투를 지휘하도록 (지시)하시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 당국의 이런 태도는 김정은 체제가 ‘인민 중시’를 강조한 상황에서 민심의 이반과 동요를 막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외신인 AP통신이 평양사무소를 운영하고 있고 중국인 왕래가 잦아 언제까지 사고를 감출 수 없는 데다 내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북한 지도부의 자신감이 붕괴 사실의 전면 공개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군 관계자는 “김정은이 민심을 세심히 보살피고 인민을 위하는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말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사과 및 대처에 대한 비판을 남남 분열의 호기로 삼고 있는 북한의 불순한 의도도 읽힌다”고 말했다.

○ 북한 주민들, “건설 규정 어겨 사고 발생”

AP통신의 동영상 서비스인 APTN은 18일 평양발 기사에서 평양 시민들이 매점 앞에 줄지어 서서 사고가 보도된 신문을 보는 모습을 전했다. 평양 시민인 박철 씨는 APTN과의 인터뷰에서 “건설 규정과 공법을 어기고 시공해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홍남혁 씨는 “인민의 이익을 절대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모든 평양 시민이 피해자 유가족과 슬픔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붕괴 사고가 일어난 시간이 직장이나 학교에 나가 있는 평일 오후여서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모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이었으면 92가구의 구성원 모두 매몰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일단 피해 상황과 북한 당국의 사고 수습 방향을 지켜본 뒤 대북 지원 제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김지영 기자
#북한 아파트 붕괴#최부일 인민보안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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