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문법에 적응하지 못한 TV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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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출신 이재규 감독 작 ‘역린’

30일 개봉하는 ‘역린’은 군 복무를 마친 현빈의 복귀작이다. 맑으면서도 나직한 현빈의 목소리가 사극과 잘 어울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30일 개봉하는 ‘역린’은 군 복무를 마친 현빈의 복귀작이다. 맑으면서도 나직한 현빈의 목소리가 사극과 잘 어울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역린(逆鱗)’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 임금의 노여움을 뜻한다. 30일 개봉하는 ‘역린’은 정조(현빈)와 그를 죽이려는 노론 세력의 투쟁을 그렸다. 영화는 한없이 무겁다. 비늘의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드라마 ‘다모’(2003년), ‘베토벤 바이러스’(2008년), ‘더킹 투하츠’(2012년)로 유명한 스타 PD 출신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부담감 때문일까, 아니면 대작(순제작비 90억 원) 사극이라는 점을 의식해서일까. 감독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듯하다.

1777년(정조 1년) 7월 28일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궁궐에 도둑이 들어 사방을 수색하게 하다’라는 글에서 영화는 단초를 잡았다. 이날 인시(寅時·오전 3시경)부터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정조와 노론 세력의 암투가 펼쳐진다. 정조는 끝없는 암살 위협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내시 상책(정재영)이 정조를 그림자처럼 지킨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의 수장이며 할머니인 정순왕후(한지민)에게 아침 문안을 올린다. 정순왕후는 왕권을 찬탈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경고를 보낸다. 궁 밖에서는 정조를 암살하려는 세력이 조선 최고의 킬러인 살수(조정석)를 고용해 거사를 꾸민다.

‘역린’은 화려한 미장센이 볼거리다. 후반부 궁중에서 펼쳐지는 화살과 조총이 어우러진 빗속 전투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역린’은 화려한 미장센이 볼거리다. 후반부 궁중에서 펼쳐지는 화살과 조총이 어우러진 빗속 전투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상미와 연기는 후한 점수를 받을 만하다. 유려한 미장센(화면 배치를 통한 영상미)을 통해 정조와 적대 세력의 갈등을 묵직하게 담아냈다. 정조가 적의 첩자에게 쏜 화살이 물살을 가르는 장면, 어린 상책이 빗물을 받아 먹는 장면에선 눈이 호사를 누린다. ‘다모’에서 봤던 유려한 화면 그대로다.

얼굴에 ‘나 착해’라고 쓰여 있는 한지민을 악녀로, 지구 대기권도 뚫을 것 같은 센 눈빛의 정재영을 남성을 쭉 빼내버린 내시로 캐스팅한 역발상이 효과를 봤다. ‘건축학 개론’과 ‘관상’에서 코미디 신성으로 떠오른 조정석은 냉혈 킬러로 나온다. 다만 살수를 키운 광백을 맡은 조재현의 연기는 혼자 결이 달라 거슬렸다.

몇 가지 덕목에도 이 영화에 별점을 세 개 이상 주기 힘든 이유는 극의 느린 리듬과 호흡 부족 때문이다. 관객은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 등장인물들과 교감을 이루기까지 1시간가량 팝콘에 자주 손이 갈 것 같다. 사건의 중간중간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반복되는 플래시백(과거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은 극의 긴장감을 뚝뚝 떨어뜨린다. 감독은 아직 드라마의 문법에 익숙한 것 같다. 드라마는 시청자가 캐릭터에 익숙해지도록 할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영화는 다르다. 사건 속에, 대사 속에 인물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20시간(20부작 드라마)과 2시간(영화)의 차이다. 메시지를 대사로 전달하려는 시도도 아쉽다. 성군을 꿈꾸는 정조가 ‘통찰이 실천이 돼야 학문의 완성이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반복하는 대사는 어떤 관객에게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정조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론에 맞서는 인물이다. 하지만 관객이 정조를 응원해야 하는 이유를 또렷하게 그려내지 못한 것 같다. 사족 하나. 현빈이 군대에서 더욱 단련한 듯한 식스팩과 이두박근을 뽐내는 장면은, 인문학 강의시간에 듣는 힙합 음악처럼 튄다. 15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역린#이재규#현빈#정조#영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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