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윤연]모든 배의 출항준비는 전투준비와 똑같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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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전남 진도군 해상에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동아일보DB
16일 전남 진도군 해상에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동아일보DB
윤연 전 해군작전사령관
윤연 전 해군작전사령관
이번 참사는 평생을 바다에서 배와 함께 생활했던 뱃사람 입장에서 볼 때 최소한의 기본 안전수칙도 지키지 않은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

군함이나 여객선이나 배가 출항하기 전에는 반드시 점검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필자는 현역 함장 시절 “출항은 바로 전투다”라고 장병들에게 강조했다. 일단 배가 출항하면 바다에는 많은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항 전 완벽한 준비태세는 중요하다. 세월호의 경우도 출항 전 승선 인원과 적재 화물은 이상이 없는지, 엔진 레이더 조타기 등 각종 항해 장비는 잘 돌아가는지, 기상은 문제없는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선장은 출항 전 보고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제출했다.
뱃사람 기본 상식조차 안 지켜

필자는 현역시절 수송함(LST)에 근무할 때 수송선 안에 탑재된 탱크나 각종 장비들을 안전하게 고정시켰던 일이 생각난다. 높은 파도가 치거나 급박하게 선회할 때 발생하는 쏠림현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는 자동차를 탈 때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세월호의 참사는 탑재 장비가 튼튼하게 고정이 안 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출항 전에는 반드시 출항 전 안전검사를 해야 하는데 누가 무엇을 조사했는지 모를 일이다.

뱃사람에게 항해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위치가 해도(海圖)상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리 설정한 기본 항로는 중요하다.

필자도 현역 시절 맹골수도를 항해한 적이 있다. 맹골수도는 폭이 좁고 조류가 빨라 대형 선박이 잘 지나가는 항로가 아니다. 우리가 좁은 골목길을 운전할 때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는 이유도 그만큼 좁은 길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선장은 선박이 이처럼 좁은 협수로를 항해할 때 반드시 선교(Bridge·배를 지휘하는 공간)에 위치해야 한다. 아울러 협수로 항해 시에는 타기 고장에 대비한 비상조타요원, 레이더, 조타수 등 증강된 협수로 항해 요원도 배치돼야 한다. 이것은 뱃사람의 기본 상식이다.

선장이 당시 항해를 책임지고 있던 26세 3등 항해사에게만 좁은 협수로 항해를 맡겼다니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직 항해사 한 명의 판단이 탑승자들의 생사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좁은 협수로에서 그것도 거의 최대속력으로 항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항로상 위험한 물체가 발견되거나 변침 지점에서는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좁은 협수로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공간이 넓은 외해에서 항해를 하면 문제될 게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흔히 공동운명체를 상징할 때 ‘같은 배를 탔다’고 말한다. 같은 배를 탄 이상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뜻이다. 그만큼 안전항해를 위해서는 선장, 승무원, 승객들이 일심동체가 돼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는 그렇지 못했다.
전쟁 중 지휘관이 도망간 격

군함이나 일반 선박이나 함장과 선장에게는 절대적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다. 배가 육지를 벗어나 바다로 나가면 세상과 격리되어 있어 선장의 결심과 명령은 바로 법이다. 그래서 함장이나 선장은 그 배를 상징한다. 선장에게는 배의 안전을 위해 승조원들을 교육 훈련시킬 책임이 있다.

2년 전 지중해 크루즈 항해를 위해 ‘루이스 크리스털’호를 탄 적이 있다. 항구를 바로 출항한 후 3000여 명의 승객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배의 조난 시 탈출해야 하는 퇴선(退船)훈련이었다. 승객들은 자신의 침실에 배치된 구명 재킷을 입고 이동 통로를 확인하며 배에서 내릴 때 자신이 사용할 구명정을 확인하는 쉬운 훈련이었다. 모든 승객들도 질서 정연하게 즐거운 표정으로 훈련에 임했다. 이처럼 중요한 퇴선 훈련마저도 세월호는 안 했다.

선장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위기관리 능력이다. 배가 위태로울 때 모든 승객들은 선장의 판단에 따른다. 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스며들 때, 퇴선 순간을 결정하는 사람도 선장이다. 그렇지만 세월호 선장은 자신의 책무를 포기하고 가장 먼저 배를 떠났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전 승무원은 각자 지정된 위치에서 개인별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데 이들도 선장과 함께 어린 학생들을 팽개치고 퇴선했다. 전쟁 중 지휘관이 적의 포격으로 우군이 위태로울 때 부대를 지휘하지 않고 도망친 것과 같다. 천안함 함장을 보라! 천안함장은 칠흑같이 어둡고, 파도가 높은 바다에서 어뢰공격을 받아 곧바로 배가 동강 나 침몰되는 와중에서도 부하를 끝까지 지휘해 안전하게 퇴함시키지 않았던가.

천안함이 군함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세월호는 호수 같은 바다에서 밝은 대낮에 2시간여 떠있는 시간이 있었다. 오히려 세월호의 퇴선 여건이 더 좋았다. 세월호 선장이 제일 먼저 배를 이탈한 것은 책임문제를 떠나 도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행위다. 천안함 함장이 마지막까지 떨어져 나간 배에 갇힌 부하들과 함께 죽겠다고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던 애함심(愛艦心)이 그에게는 없었다.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초동조치와 통합전력의 극대화다. 차제에 해난사고와 관련된 통합된 구조시스템의 효율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이제 남은 일은 실종자의 빠른 구조와 세월호를 건져내는 일이다. 사고 해역이 조류가 빠르고 수심이 깊어 단시간에 임무를 종료할 수 없다. 실종자를 찾아내고 배를 일으키는 일은 고도의 전문기술이 필요하고 위험이 뒤따른다. 천안함 구조 시 순직한 제2의 한주호 준위 같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바다는 지배하는 사람의 것

지금 우리 주변에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가 너무 많다. 이제 국민들은 비행기, KTX, 선박들을 불안해서 더이상 탈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전 불감증의 중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좀 더 강화된 행정력을 동원해 같은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바다에서 사고가 났다고 해서 바다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국익을 위해 더 많은 크루즈선을 띄워 바다로, 세계로 블루오션을 항해해야 한다. 바다는 지배하는 사람의 것이다.

금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바다에 대한 국민들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기대한다. 지금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생환할 것을 고대하는 사고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드리며, 구조 활동에 여념이 없는 구조대원들에게도 뜨거운 성원을 보낸다.

윤연 전 해군작전사령관
#세월호#선장#안전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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