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육아 퍼즐, 포기하면 지는 거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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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 산다는 것/제니퍼 시니어 지음·이경식 옮김/480쪽·1만6000원/알에이치코리아

“아빠, 우리는 살아있는 거예요?” “엄마,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확신하죠?” 저자는 “부모는 아이들의 유치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일상에서 잃어버린 자아와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고 말한다.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아빠, 우리는 살아있는 거예요?” “엄마,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확신하죠?” 저자는 “부모는 아이들의 유치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일상에서 잃어버린 자아와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고 말한다.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계모에게 맞아 숨진 어린 의붓딸 소식에 많은 이의 가슴이 먹먹했다. 게임을 하기 위해 두 살배기 아들의 코를 막아 살해한 아버지에 모두가 폭발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혀를 차며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의 패륜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걸린다. 무언가 더 있는 것 같다.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이 떠오른다. ‘육아가 힘들다’며 출산을 포기하는 이들도 흔한 세상이다. ‘부모’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를 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이’만을 이야기한다. 육아서는 수천 종에 이르지만 정작 아기가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다.

이 책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철학적 부재가 사회 전체의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강렬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뉴욕 매거진 기자인 저자는 아이와 육아가 아닌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냈다. ‘왜 부모는 육아를 싫어하나’라는 주제로 2010년 뉴욕 매거진에 게재된 기획기사를 보강한 것으로 올해 1월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종합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아이가 부부 생활, 내면의 자아에 영향을 미칠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뤄 화제가 됐다.

저자는 우선 부모들을 안심시킨다. ‘육아가 왜 힘들까? 내가 모자란 엄마(아빠)라서 그럴까’라며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아이는 성인의 삶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이며 고통스러운 변화’라고 위로한다.

2004년 텍사스 여성 909명에게 ‘어떤 활동이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가’를 조사한 결과 육아는 전체 19개 항목 중 16위에 그쳤다. 132쌍의 결혼 만족도를 조사해 보니 90%는 아기가 태어난 후 만족도가 감소했다. 아이가 생기면 섹스 횟수도 3분의 1로 준다. 저자가 만난 부모들은 결혼 전의 일, 취미, 낭만은 아이가 생기면서 모두 사라졌다고 외친다. “10개월 동안 화장실에서도 단 한 번도 혼자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저자는 아이는 ‘미치광이’와도 유사하다고 말한다. 사고를 조직화하는 뇌의 전전두엽 피질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이 피질이 발달된 부모는 당연히 상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아이 키우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설명한다. 과거 부모들은 아이를 몇 명, 언제 낳을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리지 못했다. 반면 요즘 부모들은 아이를 인생의 소중한 성취로 생각한다. 주요 인생 목표를 대하듯 계획을 가지고 육아에 임하다 보니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오늘날의 모습이 된 것도 수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 2차대전 이전에는 아이들은 부모를 돕고 공장에서 일하는 경제적 자원이었다. 인권 의식이 강화되면서 가족 경제의 일원이던 어린이는 보호의 대상으로 변했고, 돈 벌기와 보살핌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 됐다.

책은 딱딱한 연구 결과만을 늘어놓지는 않는다. 미국 전역의 육아교육 프로그램 현장에서 만난 학부모 125명의 고충을 날것 그대로 전달한다. 부모와 아이의 대화를 소설 형식으로 맛깔 나게 풀어내 주제의 몰입을 높였다.

이쯤이면 아이를 포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 순간 저자는 “아이들이 주는 선물도 많다”고 달랜다. 아이들의 미치광이 같은 행동은 부모에게 좌절감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부모를 일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아이와 함께 뛰놀면서 사회적 규칙,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이 어릴 때 가졌던 원초적인 격렬함, 최초의 광기를 재경험한다. 아이 덕분에 머리로만 세상을 받아들이는 경향에서 벗어나 직접 몸으로 소통하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다.

궁극적으로 아이는 ‘기쁨’이라고 말한다. 기쁨은 재미나 쾌락과는 달리 타인과의 연결에서 나온다. 기쁨을 온전하게 경험하려면 자녀에게 상처받고 훌쩍 커서 떠나버리는 자녀에게 상실감도 느껴야 한다. 기쁨만 계속되면 기쁨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실의 고통을 걱정하지는 말자. 저자는 “사람들은 ‘경험하는 자아’보다 ‘기억하는 자아’를 중시한다”고 덧붙인다. 장성한 아이를 보면 그간의 경험(육아의 고통)은 사라지고 기억(행복)만 남는다는 것이다.

책은 샤론 할머니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미네소타에 사는 샤론은 아들이 열다섯 살 때 자살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딸 미셸은 손자만 남긴 채 자궁암으로 죽었다. 샤론은 말한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행복만 있는 것도 아니고 슬픔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부모 노릇을 다한다는 것, 부모로 산다는 것이 있을 뿐이죠. 아이는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부분입니다.”

이 책이 부모로 사는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주진 못한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와 묶인 하나”라는 생각만큼은 꼭 간직하게 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부모로 산다는 것#자녀교육#부모#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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