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대한민국 판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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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청사.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청사.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서울지방법원의 형사단독 판사 자리는 서울시장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가 민주화 분권화되기 이전 시절 형사단독 판사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형사단독 판사는 합의부와는 달리 자기 마음대로 피고인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다. 정권의 눈에 거스르지만 않는다면 판사의 앞을 가로막을 걸림돌은 없었다.

과거보다 줄긴 했어도 판사의 영향력은 지금도 남다르다.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 총수의 죄를 벌할 수 있고, 불법을 저지른 국회의원의 정치생명을 합법적으로 끝내버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존재로 비친다. 그래서 판사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불린다.

대한민국에서 직업을 갖고 일하는 취업자는 2500만여 명. 이 중 판사는 0.01%인 2700여 명이다. 지금 법복을 입고 있는 이들 중 다수는 사법연수원에서 상위 10% 이내의 우수한 성적을 거둔 엘리트들이다. 세 다리만 건너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네 다리, 다섯 다리 건너도 판사 한 명 알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판사들의 삶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향력 있고 권위 있고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판사라는 직종은 단명(短命)한다. 판사의 명줄이 짧단 얘기가 아니라 다른 직종에 비해 일찍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판결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판사가 왜 스스로 그 권한을 내려놓고 사법부를 떠나는 걸까. 그 이유를 통해 판사들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과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  
▼ “매일 사건기록 등 수천쪽 봐야… 눈 침침해지면 끝장” ▼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판사들


27년 전 사법연수원을 5등 이내의 성적으로 수료한 A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퇴근길에 서류를 한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가져간다. 사무실에 오래 앉아있자니 배석판사들이 눈치볼까봐 신경 쓰여 일부러 일찍 자리를 비워준다. 오전 오후 내내 재판을 진행하다 보니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차 안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 선배이자 연수원 3년 선배인 변호사 B 씨다. B 씨는 법원 주요 요직을 거쳐 몇 년 전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휴대전화 너머 B 씨는 “별일 없으면 오랜만에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A 씨는 내일 재판을 위해 읽어야 할 기록더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선배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귀갓길 내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A 씨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B 변호사가 대형 로펌에서 받은 누적 연봉만 100억 원이 넘는다는 소문도 들었다. 연수원에서 자기보다 100등가량 아래였던 연수원 동기 C 검사는 몇 년 전 대기업 법무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C 씨는 2년 계약직에 불과하다며 멋쩍어 했지만 얼마 전 C 씨가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A 씨는 이제 와서 변호사를 하기에도 늦은 거 같고, 동기 선후배에 뛰어난 법관들이 많아 판사의 꽃인 대법관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A 씨는 최소한 누구 눈치 보며 살 일은 없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지만 머잖아 결국 법원을 떠나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판사들은 법복을 벗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꼽는다.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할수록 일이 오히려 더 많아지는 직종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모든 사건에서 공평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고픈 소망, 법정 밖의 새로운 세상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판사를 그만둔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결국은 판사도 법조인이면서 동시에 생활인이다 보니 현실적인 한계에 부닥치는 순간에 다다른다. 판사에게 경제적인 문제는 이상(理想)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대법원장과 대법관,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포함한 전체 판사 수는 2739명이다. 이 중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이상인 고위 법관은 147명이다.

이들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매년 공개하는 고위공직자 재산등록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들의 재산등록 사항을 기재한 관보를 분석해보니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판사가 고위 법관의 다수를 차지했다. 뒤집어 보면 경제적으로 고민이 있는 다수의 판사는 이미 고위직에 오르기 전에 사법부를 떠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관보에 따르면 고위 법관 147명의 재산 평균은 21억997만 원이다. 10억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고위 법관은 98명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국민 가구당 평균 재산(2억6203만 원)보다 적은 재산을 보유한 고위 법관은 단 2명이다. 물론 고위 법관들은 대부분 근 25∼30년을 경력 단절 없이 일해 온 50대 이상의 연령대이므로 이들의 재산액을 국민 평균과 비교하는 건 무리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에 최소 아파트 1채 이상을 보유한 고위 법관은 91명이고, 이 중 강남 3구에 아파트 2채 이상을 보유한 사람도 10명이나 된다. 법원 관계자는 “지금 고위직에 있는 판사들은 강남이 개발되기 전부터 법원 근처에 아파트를 갖고 있었던 경우가 많다”며 “원래 집안이 부유했거나, 결혼을 잘한 경우도 몇몇 있는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법관보수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초임 판사 1호봉 세전 월급은 259만1000원이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 판사는 초임부터 2호봉 대우를 받아 291만9300원을 받는다. 여기에 가족수당과 재판수당 등을 합한다고 해도 매달 3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근무 기간이 1년 9개월이 지나야 한 호봉씩 오르는 구조라서 10년차 판사의 경우 6호봉 정도에 해당돼 392만9700원을 받으며 수당은 다 합쳐서 한 달에 50만 원가량 된다. 일반 대기업에 다니는 비슷한 나이의 직장인과 비교하면 급여액이 많은 편은 아니다. 30년 가까이 판사로 일해야 최고 17호봉에 해당돼 679만8500원의 월급을 받는다. 초임 판사가 고위 공무원에 속하는 3급 공무원(부이사관)으로 임용되다 보니 아무리 야근을 자주 해도 수당 한 푼 안 나오는 점도 판사들의 말 못할 고민이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기본급에 각종 수당 다 더해도 연봉이 1억 원 안팎인데, 이번에 로펌에 취업한 초임 변호사 연봉이랑 비슷한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판사 월급만 모아서는 부유하게 살긴 힘들다. 아무리 변호사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해도 비슷한 연차의 변호사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적어도 판사보다 3배는 많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물론 모든 판사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그만두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엘리트로 손꼽히는 판사들의 특성상 자존심 때문에 속사정을 남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 경향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인 이유로 판사를 그만뒀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수도권 법원에 근무하는 이모 판사(39)는 “판사들은 학생 시절에도 자기가 속한 그룹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고, 사법연수원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했던 사람들”이라며 “자신이 그만둔 이유에 대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다른 명분을 앞세우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외견상 판사에 대한 대우는 융숭하다. 통상 10년차 미만 판사는 3급, 10년차 이상은 2급 대우를 받는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면 차관급 대우를 받으며 관용차에 운전사가 한 명씩 딸려 나온다. 다른 행정부처 공무원들은 고시 출신이라 해도 5급 사무관부터 시작해 최소 20년 이상 근무해야 올라갈 수 있는 자리를 20대 나이의 젊은 판사들이 이미 꿰차고 있다. 하지만 겉보기에 화려한 판사의 실제 일상생활은 팍팍하기만 하다.
서류에 파묻힌 일상

살인적인 업무량은 판사들이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업무량이 늘어나는 건 판사라는 직업의 독특한 특성이다. 법으로 정해진 정년 65세에 퇴직하는 판사는 한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최근 5년간 법관 퇴직 현황을 살펴보면 2009년부터 올해까지 정년을 채우고 법복을 벗은 판사는 2009년 1명, 2011년 3명, 2012년 2명 등 단 6명에 불과하다. 2010년과 올해에는 정년퇴직한 판사가 한 명도 없었다. 5년 동안 전체 퇴직 판사 수가 총 371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극소수의 판사만이 정년을 채우고 그만둔다.

보통 우리 사회에선 조직의 고위 간부가 되면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일을 기획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실무는 부하 직원이 처리한다. 검찰만 하더라도 부장검사에서 차장검사, 검사장에 승진할수록 직접 피의자를 체포해와 수사를 하거나 조서를 작성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판사는 부장판사라 하더라도 배석판사가 써온 판결문에 결재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판결문을 고쳐야 하고, 일부 사건은 자신이 직접 판결문을 쓰기도 한다. 판결문을 쓰려면 판사는 재판부에 종이 서류로 제출된 기록을 빠짐없이 검토해야 한다. 기록 검토는 배석판사가 대신 해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부장판사든 초임판사든 같은 사건을 심리할 때 검토해야 하는 서류의 양은 똑같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추석 연휴 내내 기록에 파묻혀 살았다고 한다. 선고를 위해 배석판사가 써온 판결문에 자기가 직접 수십 쪽을 더했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2010년 11월 서울북부지법 판사로 재직할 당시 썼던 72자짜리 판결문 같은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사건’에 속한다.  

▼ “판사는 사건 실체 20%밖에 몰라” 제한된 증거에 한숨 ▼

서울고법 민사부의 한 판사가 사무실에 쌓여 있는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쟁점이 치열한 사건은 기록이
수만 쪽에 이를 때도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고법 민사부의 한 판사가 사무실에 쌓여 있는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쟁점이 치열한 사건은 기록이 수만 쪽에 이를 때도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판사들이 판결문 하나를 쓰는 데 들이는 시간은 천차만별이지만 하루 만에 뚝딱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1, 2쪽짜리 형식적 판결문은 제외하고 통상 일반사건 판결문은 짧게는 2, 3일, 길게는 한 달 넘게 붙잡고 써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사실관계가 복잡한 판결문을 써야 할 때 판사는 더욱 괴롭다. 일반 형사사건의 판결문은 평균 20쪽 내외지만 대형 사건의 경우엔 수백 쪽짜리 판결문도 드물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의 D 부장판사는 “우스갯소리로 매일 봐야 하는 기록만 수천 쪽이 넘다보니 눈이 침침해지는 순간 판사의 생명은 끝난다는 말을 하곤 한다”며 “사법연수원 동기 중에 업무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고참 변호사나 검사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걸 보면 우리와는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요일 저녁 시간쯤 서울중앙지법 판사실을 돌아보면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판사들이 태반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새벽 2시 전에 배석판사가 퇴근하려면 부장판사를 찾아가 “먼저 일찍 들어가서 죄송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업무량이 많기로 악명 높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10개 재판부가 지난달 심리한 사건을 전수 분석해본 결과 공휴일과 주말을 제외한 근무일인 21일 동안 심리한 사건은 한 개 재판부당 평균 64.7건으로 하루 평균 3건이었다. 여기에 선고 사건이 10.6건으로 70건이 넘는 사건을 한 달 동안 처리해온 셈이다. 고법 부장판사들의 업무량도 별다를 바 없다. 서울고법 12개 형사부는 지난달 평균 62.8건의 사건을 심리했고, 선고 건수는 27.9건에 이른다. 한 달 동안 90여 건의 사건을 처리하다보니 고위 법관 역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법관들이 일하는 대법원이 ‘대병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위 법관에게 걸린 업무 과부하는 사법부의 골칫거리다.

매년 사법부에 접수되는 전체 사건 수는 180만여 건에 이른다. 사건마다 성격이 달라 수치로만 비교하긴 힘들지만 대법원을 제외한 전국 87개 법원의 판사 한 명이 매일 한 건 이상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의 한 남자 배석판사는 연말까지 쌓인 사건을 도저히 다 처리할 수 없어 다음 달로 예정됐던 결혼식을 내년 3월로 미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의 한 배석판사는 “법조인이 아닌 지인과 얘기하다보면 재판부가 사건 하나만 전담해서 재판하는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며 “일주일 내내 오전, 오후 재판을 하다보니 기록을 보려면 야근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올해에만 서울중앙지법 민사부와 파산부 소속 연수원 31, 32기 여판사 2명이 잇달아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여판사들은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가 많아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토로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여판사들과 인터넷 비공개 커뮤니티를 통해 육아와 업무를 병행할 때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고 서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수험생 자녀를 둔 한 여판사는 “가족을 위해 보낸 시간이 워낙 없다보니 판사를 그만두게 되면 변호사가 아닌 전업주부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여판사가 꽤 많다”고 말했다.

과중한 업무는 수도권 법원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판사 1인당 사건처리 건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부산지법 동부지원이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그들만의 세상, 균열이 시작되다

이처럼 과다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사법부가 비교적 큰 잡음 없이 버텨온 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사명감을 갖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판사들만의 조직 문화 덕분이었다. 재경 법원의 한 판사는 “판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이라며 “자기가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는 자존심이 강하다. 특히 남에게 일 못한다는 소리는 절대 듣기 싫어한다”고 말했다. 일에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기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문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조직 문화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사법연수원 1등부터 90등 정도까지 성적순으로 판사 임용을 하던 시절, 상위권 연수원생은 거의 예외 없이 판사를 희망했다. 90등에서 180등 사이는 대체로 검사나 대형 로펌을 택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이후 경험이 풍부한 10년 이상 경력 법조인을 판사로 임명하는 법조일원화를 추진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법원조직법이 개정돼 지금은 더이상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젊은 법조인이 바로 판사로 임용되지 않는다.

법조일원화가 추진되면서 자연스레 법원의 인사 구조도 함께 변하고 있다. 일례로 법원장 등 고위직에 올랐던 법관이 다시 재판부로 돌아가 일할 수 있는 평생법관제가 도입됐다. 판사들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튀는 판결’ 논란을 불식시키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제도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중간 고참급 판사가 꾸준히 늘어나게 돼 인사 적체가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지금처럼 지방법원 부장판사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인사구조 자체를 함께 바꾸겠다는 게 대법원의 계획이다. 하지만 젊은 판사는 법원장 한 번 하기 어려워진 현실이 불만스럽고, 법원장 취임을 바로 앞둔 고참 판사는 자기 바로 위 기수 선배들이 몇 개 없는 법원장 자리를 돌아가면서 하다보니 그만큼 자신이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 불만이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어떻게 보면 평생법관제는 현재 고위직에 있는 법관을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며 “언젠가는 평생 배석판사만 하다 법복을 벗는 판사도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판관으로서의 고뇌, 그리고 두려움

판사들이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건 따로 있다. 본질적으로 판사들은 법원에 제출된 증거만을 토대로 판단을 내린다. 형사사건의 경우 사건 당사자가 사건에 대해 100을 알고 있으면 경찰은 70, 검찰은 50, 그리고 판사는 20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현장에서 벌어졌던 모든 사실관계를 모조리 법정에 옮겨올 수는 없다는 얘기다. 결국 판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려야 하는 숙명을 떠안고 사는 존재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이 모호한 법정에서 판사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살인 혐의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한 1심 재판장은 항소심에서 결론이 무죄로 뒤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목격자도, 증거도 불분명했다. 검찰의 기소 역시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검찰은 계획적 범죄라고 주장했지만 우발적 살인에 가까운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이 벌어진 사실은 자명했다. 1심 재판장은 자신이 사건을 충분히 심리했다고 믿었고 다른 누가 재판을 하더라도 같은 결론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장은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장은 현장검증까지 실시해 1심에서 핵심 증거로 제시된 사실을 뒤집었다. 피고인의 모호한 살해 동기 역시 무죄 판단으로 심증이 바뀐 이유 중 하나였다. 1심 재판장은 자신의 법적 양심을 걸고 심리했고, 항소심 재판장 역시 살인자를 무죄로 만들기까지 고뇌를 거듭했다. 아직 대법원이 사건의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은 가운데 이 사건 항소심 재판장은 행여나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같은 사건에 대해 이처럼 정반대 결론이 나오는 과정은 일반인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판사들은 하급심에서 결론이 엇갈리는 것을 사법부의 기능이 제대로 작용하고 있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한 고등법원의 부장판사는 “법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며 “법관이 천편일률적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것을 오히려 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판의 성역에서 도마 위로

요즘 판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이념적 정치적 성격이 개입된 재판의 경우엔 판사에 따라 판결이 널뛰기를 하는 경우가 잦다. ‘튀는 판결’ ‘판사 개인의 주관적 이념성향이 개입된 것으로 의심받는 판결’도 적지 않게 나온다.

여전히 재판 당사자들에게 전지전능한 신처럼 군림하려는 듯한 행태도 나온다. 특히 재판을 통해 피고인의 진정한 반성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판사 가운데는 법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하고 피고인에게 면박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는 판사의 말 한마디에 숨죽일 수밖에 없다. 때론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때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손해배상 청구사건의 원고 측 대리인으로 조정 기일에 참여했는데 판사가 ‘사건 기각할 생각인데 조정하자’고 말하는 걸 듣고 화가 치밀었다.  

▼ “사회기류에 휘둘려서야” 정치적 판결 내부서도 비판 ▼

야망있는 판사 ‘몸조심 판결’이나 주관적 이념 개입된 판결 눈총
“변호사 선배 만나기도 눈치보여” 식사자리 갖고 밥값 나눠 내기도


부장판사와 좌·우 배석판사가 앉아 재판을 진행하는 법대의 뒷모습. 법정 한가운데에 솟아있는 법대 위에 올라서면 법정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계절 내내 같은
법복을 입어야 하는 판사들은 여름이면 아무도 볼 수 없는 이 법대 뒤쪽에 선풍기를 가져다 놓고 재판을 진행하기도 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부장판사와 좌·우 배석판사가 앉아 재판을 진행하는 법대의 뒷모습. 법정 한가운데에 솟아있는 법대 위에 올라서면 법정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계절 내내 같은 법복을 입어야 하는 판사들은 여름이면 아무도 볼 수 없는 이 법대 뒤쪽에 선풍기를 가져다 놓고 재판을 진행하기도 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사건을 좌지우지하는 재판장 말을 안 들을 순 없는 노릇이지만 기각하겠다면서 조정하자는 건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거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판사가 재판 중 부당한 언행을 일삼더라도 약자인 변호사 입장에서는 꾹 참을 수밖에 없을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재경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30대 후반의 나이로 첫 형사 단독 재판을 맡았을 때 죄를 짓고 법정에 선 피고인에게 호통을 친 적도 있고, 반성하는 피고인은 관대하게 대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보다 인생을 오래 산 것도 아닌 판사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에 얼마나 공감했을지 의문이 든다. 젊은 시절의 치기어린 행동이었다고 후회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대다수의 판사는 튀는 걸 싫어한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사는 판사가 대다수다. 판사 사회에서도 ‘가카새키 짬뽕’ 논란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정렬 전 부장판사와 같은 인물은 외면당한다. 판사들은 이 전 부장판사를 100명 중에 1명 나올까 말까 한 특이한 경우로 꼽는다.

판사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도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다. 과거처럼 노골적인 전관예우 행태는 보기 힘들어졌지만 그렇다고 전관예우 관행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고위 법관 출신이 로펌으로 가면 연봉이 수십억 원에 이르는 경우가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앞으로 법조 일원화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로펌들의 ‘후관예우’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재판연구원(로클럭)으로 일하다 로펌에서 일한 변호사가 법관으로 임용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로펌과 예비 판사 후보들이 상부상조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신이 몸담았던 로펌이 수임한 사건에 대해 공정성 시비가 일 수 있다.

변호사가 의례적으로 후배 판사들에게 밥이나 술을 사던 향응·접대 문화는 1990년대 후반 의정부 사법비리 파동 이후 많이 사라졌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논란에 오를까 봐 변호사와 사적인 자리에서의 접촉 자체를 피하는 판사도 적지 않다. 20년 차 고참 부장판사는 “판사도 사람인데 친한 연수원 동기 변호사를 만나면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할 수 있다”면서 “대신 밥값은 서로 번갈아가면서 낼 때도 있고 나눠 낼 때도 있다. 과거 배석판사 시절 모셨던 부장판사가 내게 ‘7 대 3의 법칙’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밥값을 계산할 때 돈 잘 버는 변호사가 7을 내고 판사가 3을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봤을 때 과하지 않을 정도의 친목관계라면 일부러 피하진 말라고 일러주신 말씀을 새겨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판사가 관료화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재판부별로 독립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사법부 전체가 어떤 사안에 대해선 대법원장을 필두로 법원행정처에서 각급 법원으로 이어지는 조직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비판이다. 판사 중에서도 엘리트로 꼽히는 극소수의 인원만 차출해 법원 인사 및 주요 기획 업무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판사 재직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판사 중에서도 제일 일 잘하고 똑똑한 이들만 행정처 심의관으로 선발된다”며 “사실상 대법원장의 친위대처럼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10년차 이하의 한 판사는 “사실 아무리 배석판사가 사건에 대해 부장판사와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결국 부장판사의 의견을 따라가는 게 암묵적으로 굳어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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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경제민주화’처럼 사회의 대세가 되어버린 특정 기류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하는 대법관 등의 야망이 있는 판사들 가운데는 나중에 정치권에서 트집이 잡힐 판결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워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법조인들은 법원이 국민 법감정과 너무 동떨어진 판결을 내려선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여론만 따라가거나 사건 이외의 변수를 조금이라도 의식한 판결을 내려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률에만 집착한 판결도 문제지만 판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분위기나 다른 무언가를 의식해 법률적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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