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상아탑의 파벌싸움, 세계 정상급 테너 교수영입 막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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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성악과에 넉달간 무슨 일이…

서울대 성악과 교수 임용 공채과정을 둘러싸고 이 학과 교수들 간에 비방과 파벌 싸움이 난무하며 ‘복마전’ 양상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본부 측은 19일 “성악과 교수 심사 단독후보로 올라갔던 테너 신동원 씨(40)에 대한 임명안이 최종적으로 무산됐다”고 밝혔다. 교수사회의 뿌리 깊은 파벌싸움과 갈등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테너의 교수 임용을 막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교수사회 뿌리 깊은 파벌싸움

서울대 성악과 교수그룹 내의 갈등은 6월 신 씨의 2단계 오디션평가 결과가 나왔을 때 이미 불거지기 시작했다. 심사에 참가한 6명의 성악과 교수 중 임용에 찬성하는 4명은 만점을 줬고 반대하는 2명은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줬다. 한 대학 관계자는 “기준이 모호한 예술 영역이라 해도 이런 일은 드물다”며 “서로 편을 가른 교수들이 점수를 극단으로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용 평가 과정에서 비방 수준의 의견대립도 오갔다. 신 씨가 취득한 미국 필라델피아 AVA(Academy of Vocal Arts in Philadelphia)의 ‘아티스트 디플로마’(예술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 이수자에게 수여하는 증서)가 논란이 됐다.

신 씨를 반대한 교수들은 “필라델피아 AVA는 학생이 20∼30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원”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하지만 찬성 측 교수들은 “무지해서 하는 소리”라며 “정원은 적지만 전교생이 매년 10만 달러씩 지원을 받는 오페라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기관”이라고 반박했다. 서울대 내규에는 ‘박사학위 상응자격’에 ‘아티스트 디플로마(미국)를 박사에 상응하는 자격으로 인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서울대 성악과 교수 사이의 파벌싸움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신 씨 임용 건 이전에 2009년 연광철 교수 임용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제출서류 중 공연실황을 담은 DVD 하나가 이틀가량 늦게 도착했다. 이런 지각 제출은 관행상 크게 문제 삼지 않아왔지만 임용을 반대하는 쪽에서 본부에 결사적으로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임용이 2010년으로 연기됐다. 이번에 신 씨의 임용을 반대하고 있는 2명의 교수 중 한 명인 A 교수도 역시 임용될 때 비슷한 일을 겪어 임용이 연기된 적이 있다.

대학본부 관계자는 “성악과는 교수와 학생이 일종의 ‘도제식’ 교육관계로 묶인다”며 “구조상 자기편이 생기고 다른 편과는 적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로 편이 갈린 교수들 간에 자기편이 될 사람을 신규 교수로 임용시키려는 경쟁이 치열하다는 설명이다.

○ 비방전에 온갖 암투 난무

한쪽은 신 씨의 임용을 막으려 하고 다른 쪽은 성사시키려는 과정에서 교수가 서류를 빼돌려 평가를 수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본부 관계자는 “신 후보의 평가를 기록한 문서가 음대학장에게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한 교수가 허락 없이 이 문서를 가져가 자신이 적은 평가내용을 고쳤다”고 말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당시 김영률 학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A 교수가 비서의 제지를 무시하고 학장실에 들어가 문서를 가져간 뒤 자신이 했던 평가 내용을 더욱 부정적으로 고치고 자신의 서명을 지워버린 사실이 있었다. 해당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올린 결재 서류에 수정할 것이 있어 가지고 나온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교수가 친분 있는 정치인을 동원해 교수 임용이 무산되도록 학교에 압력을 넣으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음대 고위 관계자는 “여야 의원 4명이 신 씨 임용 관련 자료를 요청해와 대학 본부 측이 매우 곤혹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신 씨를 반대한 교수 중 한 명은 정치인 출신 정부 고위인사의 자녀를 불법과외하다 적발된 일이 있다. 정치권에서 신 씨 임용 문제를 둘러싸고 서울대를 감사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비공식적으로 도는 등 논란이 일자 대학 본부는 19일 신 씨 임용 부결 결정을 내렸다.

대학본부 측 관계자는 “신 씨의 교수 임용 자격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들은 모두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내부적으로 결론이 났다. 서울대가 데려와야 할 인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임용이 무산된 데 대한 정확한 사유를 밝힐 수 없다”고만 말했다.

신 씨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 카루소 국제 콩쿠르, 마리아 앤더슨 콩쿠르 등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콩쿠르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서울시립오페라단 이건용 단장(전 서울대 음대 교수)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신 씨를 “세계 정상급의 테너”라고 평가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서울대 성악과 교수 임용’관련 정정보도▼

본지는 8월 21일자 ‘상아탑의 파벌싸움, 세계 정상급 테너 교수 영입’ 및 11월 2일자 ‘파벌싸움, 서울대 성악과 또 교수 임용 갈등’ 제하의 기사에서 성악과 교수 임용과 관련해 비방과 파벌싸움이 난무해 테너의 교수 임용이 무산되었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성악과 교수 임용이 무산된 것은 일부 교수의 결사반대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가 교수 임용 자격규정 및 공고에서 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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