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선중앙TV 30분간 태극기 깜짝 노출,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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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탁구선수권 南꺾고 우승 녹화중계

태극기 내보낸 北, 한국을 국가로 인정?



북한 조선중앙TV가 20일 방영한 세계탁구선수권 결승전 장면. 조선중앙TV가 자체 제작한 스코어보드에 태극기 그래픽이 나타나 있다(왼쪽 사진). 외국에서 화면을 받아 녹화중계하는 화면에서 태극기를 지우곤 했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일이어서 주목된다. 2010년 12월 북한이 녹화중계한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의 한국과 중국 간 여자배구 결승 장면(오른쪽 사진)에선 중국 국기는 그대로 두고 태극기를 모자이크 처리했다. 조선중앙TV 캡처·연합뉴스
태극기 내보낸 北, 한국을 국가로 인정? 북한 조선중앙TV가 20일 방영한 세계탁구선수권 결승전 장면. 조선중앙TV가 자체 제작한 스코어보드에 태극기 그래픽이 나타나 있다(왼쪽 사진). 외국에서 화면을 받아 녹화중계하는 화면에서 태극기를 지우곤 했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일이어서 주목된다. 2010년 12월 북한이 녹화중계한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의 한국과 중국 간 여자배구 결승 장면(오른쪽 사진)에선 중국 국기는 그대로 두고 태극기를 모자이크 처리했다. 조선중앙TV 캡처·연합뉴스
북한이 전 주민이 시청하는 조선중앙TV에 한국의 국기인 태극기가 나오는 장면을 30분 넘게 공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매체가 의도적이라고 할 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태극기를 공개적으로 노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태극기를 인정한다는 것은 한국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지금까지 태극기를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조선중앙TV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전날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북한 4·25체육단 소속 김혁봉-김정 조가 한국의 이상수-박영숙 조를 꺾고 금메달을 딴 혼합복식 결승 경기를 30여 분이나 녹화중계했다. 이때 북한은 스코어보드 속에서 인공기와 태극기를 표시한 그래픽을 화면에 나란히 띄워 그대로 방영했다. 과거 각종 국제경기에서 태극기가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장면에선 모자이크 처리를 하던 녹화중계의 전례와 크게 달라진 것이다.

가까운 예로 북한은 2010년 12월 제16회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과 중국의 여자배구 결승 경기를 녹화중계하면서 스코어보드 속의 중국 국기는 그대로 두고 태극기만 모자이크 처리해 방영한 일이 있다.

북한의 이번 태극기 노출은 의도적인 것이라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은 경기를 방영하면서 자체 제작한 스코어보드를 사용했다. 여기에 ‘남조선’(한국)이라고 적은 국명 옆에 태극기 그래픽을 삽입했다. 태극기가 없어도 되지만 굳이 넣었다는 점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직접 지시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의 속내를 모르는 상태에서 주민 전체가 지켜볼 TV 화면에 목숨을 걸고 자의로 태극기를 그려 넣으라고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은 북한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 TV에 태극기가 아주 잠깐 노출됐던 사례가 없지는 않다. 남북 간 화해 분위기가 고조됐던 2002년 북한은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4강까지 올랐던 경기들을 녹화중계했고, 당시 골대 뒤쪽에 걸려 있던 태극기가 스치듯 노출됐다. 하지만 이는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경기 중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편집을 하지 못해 벌어졌던 ‘사고’로 보인다.

북한은 지금까지 주민들에게 태극기가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통제했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북한이 스포츠 분야의 남북 단일팀을 구성할 때 한반도기를 고집한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북한에서 태극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탈북자 인터넷신문인 뉴포커스가 지난해 8월 탈북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북한에 있을 때 태극기를 알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4%가 “전혀 몰랐다”고 답변했다. 2000년 이전 탈북자 중에선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태극기를 알았다는 16%는 몰래 한국 드라마를 봤거나 일부 고위층 출신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이번 태극기 방영은 대남 관련 프로그램 방영에서 획기적인 변화이긴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속내를 짐작하기가 쉽지는 않다. 김정은이 폐쇄적인 아버지와는 다른 지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방영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에 한류가 급속히 확산돼 더이상 억지로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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