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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금융 무엇이 문제인가]<下> 외면받는 신용회복 정책

기사입력 2013-03-06 03:00:00 기사수정 2013-03-06 10:32:53

사적 채무조정 한계… 개인파산-회생 묶어 통합관리해야

# “새 정부가 국민행복기금으로 빚을 탕감해 준다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정책이 나와도 자격이 까다로울 가능성이 높아요. 예전 정부에서도 신용대사면 정책은 ‘용두사미’로 끝났죠.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게 나아요. 탕감받을 금액도 더 클걸요?”

이달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의 ‘파산·개인 전문 법률 사무소’를 내건 한 법률사무소. 사무장이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모 씨(42)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김 씨는 2008년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려 가게를 열었다. 대출액은 2억 원. 장사는 시원찮았다. 카드 돌려 막기로 버티다 지난해 8월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런 김 씨에게 사무장은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대책이 나와도 원금을 모두 탕감해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개인회생제도를 통해 5년 동안 최저생계비 이외의 소득으로 빚을 갚으면 나머지는 다 탕감받을 수 있다”며 부추겼다. 결국 김 씨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 저축은행 대출을 장기 연체 중인 강모 씨(52)는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연락을 받았다. 강 씨의 빚을 인수한 신용회복기금이 그의 신용을 회복시켜 주기로 한 것. 10년 분할상환으로 연체이자는 탕감해 주고 원금은 30% 깎아준다는 내용이었다. 캠코 측은 어렵사리 강 씨에게 연락이 닿았지만 강 씨의 반응은 싸늘했다. 10년에 걸쳐 빚을 갚느니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겠다는 것이었다.

빚더미에 짓눌린 서민들의 개인회생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탕감 폭이 크다는 이유로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채무재조정)을 비롯한 사적(私的) 채무조정보다는 개인회생이나 파산 등 공적(公的) 채무조정을 택하는 서민이 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에서 논의 중인 신용회복 지원 방안은 사적 채무조정 위주여서 미국이나 독일처럼 통합 채무조정안을 만드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개인회생 신청, 개인워크아웃보다 많아

5일 금융당국과 법원 등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개인회생과 파산 등 공적 채무조정 신청 건수는 75만575건이었다. 이는 사적 채무조정 신청 건수(77만2733건)에 육박한다.

공적 채무조정은 개인회생과 파산으로 법원의 강제력을 바탕으로 한다. 반면 사적 채무조정은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맺은 협약에 따라 원리금을 감면해 주거나 장기 분할 상환을 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및 프리워크아웃과 캠코의 신용회복기금을 바탕으로 한 채무조정이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 두드러졌다. 지난해 공적 채무조정의 신청 건수는 15만1913건으로 전년(13만4926건)보다 12.6% 증가했다. 반면 사적 채무조정 건수는 17만2414건으로 전년(16만9461건)보다 1.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개인회생 신청 인원이 폭증한 데 따른 것이다. 개인회생 신청자는 2012년 9만368명으로 2004년 제도가 도입된 뒤 처음으로 9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전년(6만5171명)보다 38.7%나 늘어난 수준이다. 개인회생 신청자 수는 2008년 4만7874명, 2009년 5만4605명, 2010년 4만6972명 등이다.

○ “5년만 갚으면 빚 탕감되는데 왜 개인워크아웃을?”

공적 채무조정이 늘어나는 것은 사적 채무조정보다 유리한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개인회생을 신청한 최모 씨(55)가 단적인 사례다. 그는 남편이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파출부 등 궂은일을 하면서 두 딸을 홀로 키웠다. 생활비가 늘 부족해 은행 대출과 카드빚을 받아 1800만 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는 급기야 카드 돌려막기를 했고, 채무는 6000만 원에 이르러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했다.

최 씨는 지난해 12월 개인회생 신청을 했다. 현재 파출부로 버는 월급 150만 원에서 최저생계비(85만 원)와 월세의 일부(30만 원)를 제외한 35만 원가량을 매달 갚아 나가고 있다. 이렇게 5년 동안 2100만 원을 갚으면, 나머지 4900만 원은 갚지 않아도 된다. 그는 “앞으로 5년간은 힘들지만, 5년만 버티면 신용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회생은 빚을 갚기 어렵게 된 개인이 법원에 원리금 탕감을 신청하는 것이다. 법원 인가를 받으면 소득에서 최저생계비의 약 1.5배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빚 갚기에 써야 한다. 하지만 5년이 지나면 남은 대출원금을 100% 탕감받을 수 있다.

반면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은 연체 기간 3개월 이상의 연체자를, 프리워크아웃은 연체기간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의 단기 연체자를 대상으로 한다.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협약을 바탕으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협약에 가입한 금융회사의 연체 채무에 한정해 지원해 대개의 경우 사채는 제외된다.

감면 폭도 다르다. 개인회생이 5년간 갚으면 전액 탕감되거나 개인파산은 파산 선고 즉시 전액 탕감된다. 하지만 개인워크아웃은 원칙적으로 원금이 최대 50%까지 감면된다. 프리워크아웃은 원금 탕감은 불가능하고, 연체이자만 깎아준다.

○ 개인회생 등 법원 통로 묶어 통합 채무조정안 마련해야

사정이 이런데도 국민행복기금 관련 등 신용회복 정책은 금융정책의 테두리에서 논의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설립해 금융회사나 민간자산관리회사가 보유한 개인의 연체채권을 사들이겠다고 했다. 신용회복 신청자를 대상으로 채무를 조정해 장기 분할 상환을 유도하겠다는 것. 공약에서는 채무 감면 폭도 일반 채무자는 50%,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70%까지 탕감해 주겠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공적 채무조정에 대한 논의는 아직 본격화되고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공적 채무조정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 모럴해저드 논란이 일 수 있고 신용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미국과 독일, 네덜란드는 개인이 법원에 채무조정을 신청하기 전에 신용상담을 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점을 참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적 채무조정은 채권자와 채무자 간에 채무를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사적 자치 원칙에 어긋난다”며 “금융채무 불이행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려면 법적 절차 이전에 채무재조정과 신용상담, 교육과정을 거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채무자의 여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공적 채무조정과 사적 채무조정의 통로를 묶은 통합 채무조정 방안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유영·황형준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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