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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아버지에 충성편지 썼던 전두환, 집권후엔…

동아일보

입력 2013-02-16 03:00:00 수정 2013-03-13 17:11:43

박근혜의 그 열여덟해 1979.11.21∼1997.12.10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國葬)이 끝난 직후 대통령 가족들이 돌아갈 신당동 집의 수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찾아갔더니 전두환 소장이 감독하고 있었다.” ―선우련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 ‘비망록’(1993년).

선우 전 비서관이 회상하는 그때는 1979년 11월 초다.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 전 대통령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10·26사건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었다. 그토록 엄중한 직책을 맡은 전 전 대통령이 바쁜 일정에 틈을 내서 박 당선인이 살 집을 신경 쓴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10·26직후 청와대 비서실장실 금고에서 발견된 약 9억 원 가운데 6억 원을 박 당선인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당시 대위로서 서울대 문리대 교관을 맡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육군사관학교 생도 800여 명을 조직해 5월 18일 오전 서울 동대문에서부터 ‘혁명 기념식’ 장소인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 일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실 민정담당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1979년 1사단장으로 있을 때 박 전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를 쓴 적도 있다고 한다. 이 편지를 우연한 계기로 습득했던 노태우 정부의 한 핵심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청와대에서 식사를 한 뒤 보낸 편지였던 것 같다. 한 몸 바쳐 끝까지 모시겠다는 식의 문구들 뒤에 ‘누구를 어디에 보내주십시오’ 하는 군 인사 청탁이 줄줄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박 당선인이 신당동 집에서 이사해 1984년까지 살았던 서울 성북구 성북동 집도 전 전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은 당시 신기수 경남기업 회장이 지었다. 신 회장은 생전인 2007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의 유품이 많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니 집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 전 대통령이 보내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럼에도 전두환 정권 시절은 박 당선인에게 ‘서러운’ 시기였다. 공개적인 추도식도 할 수 없었다. 선우 전 비서관은 전두환 정권 초기 자신의 비망록을 토대로 ‘인간 박정희’라는 가제로 박 전 대통령의 전기를 집필하다 제지당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전두환 정부의 산파 격이자 대통령정무1수석비서관을 지낸 허화평 전 의원은 지난해 “반(反)유신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 유족을 보호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추도식을 국립묘지에서 갖지 못하게 했다”고 한 언론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전두환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도 했고, 그런 사회적 기류를 방치한 측면도 있었다. 1980년대 말 한 TV 인터뷰에서 박 당선인은 “(전두환 정권 시절) 그렇게 서럽게 만든 분이 전두환 씨냐”라는 질문에 “그 당시 전체를 통틀어서요”라고 완곡히 답했다. 하지만 신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박 당선인이 당시 전 전 대통령에게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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