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좋은 직장 갈 수 있다면…” 대학 졸업후 4, 5년 재수 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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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실업 부채질하는 ‘일자리 불일치’

#1 서울 유명 사립대를 졸업한 최모 씨(32)는 올해로 5년째 취업준비생이다. 고시 준비 때문에 남보다 늦게 취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매년 30여 곳에 원서를 들이밀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최 씨는 대기업만 고집할 뿐 중소기업에 원서를 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자신이 대기업에 못 붙은 건 ‘고시를 준비하느라 남들처럼 스펙을 제대로 갖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다.

최 씨는 “나도 나름대로 알아주는 대학을 나왔는데 중소기업에 갈 수는 없지 않느냐”라며 “친구들도 대부분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라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라고 말했다.

#2 경기 하남시에서 산업용 자재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은 6개월째 신입사원을 한 명도 뽑지 못했다. 30년 된 이 회사는 지역사회에서 탄탄한 기업으로 평가받지만 채용 공고를 내도 찾아오는 젊은이가 드물고 그나마 몇 달도 안 돼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모 사장(40)은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 두 달 만에 그만둔 한 대졸사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기업 취직 준비를 하고 있더라”며 “초임 월급 200만 원 이상에 복리후생을 내걸어도 사람이 오지 않아 한국인 채용은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전했다.

‘좋은 일자리’를 향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 씨처럼 더 좋은 직장을 찾느라 ‘자발적 실업자’로 남는 청년 구직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가 본인이 원한다면 중소기업 취업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자리 미스매치’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수조 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의 과도한 미스매치 현상이 계속되면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가중되고 경제 활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만혼(晩婚), 저출산 등 사회문제까지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상당수는 “부모가 중소기업 반대”

서울 중위권 대학을 졸업한 김모 씨(29)는 요즘 아침마다 PC방이나 마을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지난해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곧 사표를 썼다. 그는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한테 자격지심도 들고, 막상 입사해 보니 딱히 회사에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걱정할 것 같아 아직은 퇴사 사실도 집에 알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수십 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아직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현대경제연구원, 잡코리아가 청년 구직자 700명을 대상으로 취업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 중 “중소기업 취업을 목표로 한다”는 답변은 23.6%, “취업을 위해 열악한 근무환경도 감수하겠다”는 답변은 2.8%에 그쳤다. 이들은 대체로 취업 준비를 통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직장에 언젠가는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중소기업 취직에 대해 부모의 반대가 심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26.3%나 됐다. 남성 구직자의 경우 이 비율은 36.8%로 크게 높아졌다. 가족 등 주변의 ‘과잉기대’가 청년실업자 양성에 한몫하는 셈이다. 지난해 한 중소기업에 취직했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실업자가 된 박모 씨(27)는 “‘그런 곳에 취직하라고 돈 들여 대학 보낸 줄 아느냐’라는 부모님 말씀에 바로 사표를 냈다”며 “나는 중소기업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아직 세상을 모른다’는 핀잔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구직자의 눈높이는 높은 데 반해 기업들의 채용 규모는 정체되면서 좋은 일자리 경쟁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장후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자리 공급에도 불구하고 미취업 상태의 대졸자가 매년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미스매치의 규모는 계속 확대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채용정보사이트 ‘워크넷’에 등록된 구인·구직 수요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대졸 이상 학력의 구직자는 75만4000명이었지만 같은 학력에 대한 기업의 구인 수요는 3만9000명에 그쳤다.

○ “30세까지는 실업자 신세 감당”

한창 일할 나이인 청년 구직자들의 ‘취업 유예기간’도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에서 ‘취업준비의 한계 연령’을 묻는 질문에 남성은 평균 30.5세, 여성은 28.9세라고 답했다. 남자 대학생의 졸업연령이 25, 26세임을 감안하면 이들은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라면 졸업 후에도 4, 5년은 취업준비를 할 의사가 있다는 뜻이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 진출이 그만큼 늦어지고 결혼과 출산도 연기될 수밖에 없다.

취업준비가 길어지는 것에 대해 구직자들이 덜 절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 하루빨리 어디든 취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꼭 마음에 드는 몇 군데만 골라 원서를 넣고 ‘안 되면 내년에 다시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대기업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중소기업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점에서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를 청년 구직자의 탓으로만 돌려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대학을 나와 취업준비를 하는 강모 씨(27)는 “대기업에 들어가면 고액연봉은 둘째 치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지고, 미래에 만날 배우자의 ‘급’도 올라간다”며 “모두가 원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창호 잡코리아 사업본부장은 “미스매치 현상은 대졸자가 너무 많아진 탓도 있지만 대-중소기업 간 급여차가 너무 벌어진 탓이기도 하다”며 “그런 점을 감안해도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가듯이 적성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스펙’에 맞춰 취직하는 젊은이들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재동·박재명·황형준 기자 jarrett@donga.com  
민소영 인턴기자 부산대 사회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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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대핟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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