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장기기증 턱없이 부족… 한국, ‘장기이식 관광’ 두번째 큰손 오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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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연구진 美학회지에 논문


우리나라가 중국 내 장기 밀매로 대표되는 ‘장기이식 관광(Transplant Tourism)’의 두 번째 ‘큰손’이라는 해외 연구결과가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장기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해 원정 수술을 불사하는 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과 함께 기증 서약을 늘릴 방안은 서랍 속에 방치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네덜란드 에라스뮈스 병원 및 중앙경찰청 연구진이 미국이식학회지에 게재한 논문 ‘해외에서 이식용 장기를 구매하는 환자에 관하여’에서 한국을 원정 장기이식 여행자가 두 번째로 많은 국가로 지목했다. 세계 각국의 원정 장기이식 관련 논문 86건에서 언급된 환자 6002명의 사례를 국적별로 분석한 결과 한국 환자가 1122명(18.7%)으로 대만(1227명)에 이어 가장 많았다는 내용이다.

논문에 따르면 장기 적출 공여자 4244명 중 2700명(63.6%)은 중국인이었다. 중국은 사형수나 사고 사망자의 장기를 몰래 빼내 불법 거래하는 관행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다가 2015년 1월 이를 전면 금지한 바 있다. 현행 장기이식법에 따르면 장기 매매는 해외에서도 불법이지만 지난해 중국 내 60억 원 규모의 장기이식 수술을 알선한 한국인 브로커가 경찰에 붙잡히는 등 적발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연구진은 “인종의 유사성이 장기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기존 논문 내용을 교차 분석하는 ‘메타 분석’ 기법은 장기 밀매처럼 실제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분야의 실태를 추정할 때 주로 쓰인다. 연구진은 “‘연간 3000∼6000건의 콩팥 이식이 불법으로 이뤄진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추산에 비하면 이번 연구 결과는 새 발의 피”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한이식학회 소속 교수들은 네덜란드 연구진의 논문이 △기존 문헌만을 참고해 실태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고 △집계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발견됐으며 △한국인 원정 장기이식 환자를 최소 80명 중복 집계했다며 해당 학회지에 반박문을 실었다. 안형준 경희대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정밀한 논문은 아니었지만 ‘오죽하면 이런 연구 결과까지 나오느냐’며 열악한 국내 장기 기증 실태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내 이식 대기자는 3만286명이었지만 실제 이식 수술은 4658건으로 충족률이 15.4%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 비율은 2001년 25.9%에서 2010년 17.2% 등으로 줄고 있다. 인구 100만 명당 뇌사 기증자 비율(2015년 기준)은 미국이 28.5명, 이탈리아 22.5명, 영국 20.2명 등으로 한국(10명)보다 배 이상 높다. 사망했을 때 장기를 기증하겠다며 ‘기증희망자’로 등록하는 사람은 2010년 21만9490명에서 지난해 14만221명으로 36.1%나 감소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등 일부 시민단체는 “운전면허 응시원서 작성 시 장기 기증 희망 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등록자를 크게 늘릴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미온적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찰이 전산 처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찰 측은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지만 정부가 장기기증 서약을 강요하는 것으로 오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장기기증#장기이식 관광#장기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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