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백지신탁 구멍… 직무관련 주식 산뒤 위탁매각땐 손 못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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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보유 공직자 231명 조사했더니

 A 전 국립대 병원장은 지난해 재임 중 제약 및 의료기기 회사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공직자윤리법의 주식백지신탁제도에 따르면 직무관련성이 있는 3000만 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공직자는 이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A 전 원장은 이에 따라 해당 주식들을 정부 공직자윤리위에 위탁하고 올해 1억 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매각했다. 그는 “자금을 위탁 운용해주는 증권사가 동의 없이 사들여 백지신탁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거래였기 때문에 A 전 원장은 별도 조사나 징계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다른 해석이 나온다. 이런 식이라면 주식백지신탁제도를 악용해 공직자가 직무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합법적으로 거래해도 처벌할 수 없는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올해 3월 25일∼8월 5일 공개된 관보 14개와 올해 공개된 주식백지신탁 관보 5개에 이름을 올린 주식보유 공직자 231명(중복 공개 포함)을 분석한 결과 재임 중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거래한 공직자가 다수 있었다. 주식백지신탁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보유해 업무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2005년 도입된 제도다. 대상자는 공직자윤리법이 정한 재산공개대상자 1800여 명이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A 전 원장처럼 공직자가 재임 중 직무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매입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방법이 없다. 직무관련성이 의심되는 3000만 원 이상의 주식은 신고하고,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면 백지신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지신탁이 된 뒤 해당 주식을 추가 매입하거나 신고 의무를 위반했을 때 해임 등의 처벌을 할 수 있다.

 주식의 직무관련성 심사도 허술하다. B 전 공기업 사장은 재임 중 주식 보유 기업이 인수합병(M&A)되는 바람에 직무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보유하게 됐는데도 신고하지 않고 퇴임했다. 주식 백지신탁제도에 M&A에 대한 신고 규정이나 퇴직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B 사장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공직자윤리위 관계자는 “개인정보여서 주식 거래 내역을 확인해줄 수 없다”며 “퇴직자를 처벌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B 사장의 주식 거래가 담긴 관보는 인터넷에서 현재 비공개 처리된 상태다.

 공직자가 직무관련성 신고 대상이 아닌 3000만 원 미만의 주식을 여러 번 매매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 금융공기업의 C 상임감사는 재임 기간 주로 은행주를 소규모로 여러 차례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공직자의 주식에 대한 직무관련성을 심사하는 공직자윤리위 주식백지신탁위원회는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이 각각 3명씩 추천하는 총 9명으로 이뤄져 있다. 9명이 올해 3월 정기 재산공개 대상자 1813명에 대한 심사를 해야 한다. 적은 인력이 많은 공직자를 한꺼번에 심사하다 보니 정확한 판단이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재임 중 직무 관련 주식을 매입하는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재임 중 직무 관련 주식을 매입한 뒤 퇴직 후 처분하는 경우에 대한 보완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직자가 직무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사서 파는 행위 자체가 주식백지신탁 제도의 근본 취지를 침해한 것”이라며 “3000만 원의 직무관련성 신고 기준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백지신탁#위탁매각#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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