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검찰 수사 본사 겨누자 떠밀려 사과… 피해자측 “진정성 없다” 보이콧 방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가습기살균제 英본사 수사]옥시 2일 공식 대국민 사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발생 이후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던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가 2일 5년 만에 백기(白旗)를 들고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것은 검찰의 칼끝이 영국 본사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본사는 2001년 당시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에 책임이 있다는 의혹, 그리고 2011년 사건이 불거진 이후 각종 연구보고서 조작과 증거 은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영국 레킷벤키저는 2001년 한국회사 옥시의 지분 100%를 사들였다.

문제의 ‘옥시싹싹 New 가습기 당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제조된 가습기 살균제다.

영국 본사는 그동안 “한국 회사를 인수하기 전부터 제조돼 온 것이라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검찰도 옥시 연구소 최모 전 선임연구원 등 관계자 조사와 2월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원료 중개상의 납품 장부 등을 통해 PHMG 성분이 든 시제품이 2000년 10월부터 출시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영국 본사가 옥시를 인수한 뒤 5년간 경영한 신현우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영국 레킷벤키저가 한국 법인을 인수한 것은 2001년 4월이고, PHMG 성분 살균제는 2001년 10월부터 판매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통해 제조 판매의 책임이 본사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법인 내부 지휘체계 외에) 한국 담당자→홍콩지부→영국 본사의 별도 지휘체계도 있었다”고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엇갈린 공방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신 전 대표는 물론 영국 본사의 책임을 밝혀내는 데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설령 본사에 첫 제품의 제조 및 판매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해도 우리 보건당국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인정한 이후 연구 결과를 조작하거나 은폐하려 한 정황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해 혐의를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본사가 이사회를 열어 2일 RB코리아 대표가 공식 사과에 나서기로 했지만 이는 ‘떠밀린 사과’에 불과하다는 눈초리는 여전하다. 숨 가쁜 상황 속에서도 옥시 한국지사 임직원 100여 명이 3월 말 3박 4일 일정으로 태국 휴양지 파타야에 다녀온 사실이 알려진 것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매년 2500억∼2800억 원의 매출에 20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려 포상휴가를 다녀온 것 아니냐는 지적에 옥시 관계자는 “태국 지사와의 비즈니스 미팅이었다”고 해명했다.

영국 레킷벤키저 이사회는 2014년 3월 환경부 등에 기탁한 50억 원과 추가 출연키로 한 보상기금 50억 원 등 100억 원을 피해자 기념공원 설립 등에 쓰도록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와 별도로 개별 피해자 합의금액을 최소 4억∼5억 원 선에서 정하고, 이미 합의한 피해자들에게도 보상금을 다시 책정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 측은 진정성 없는 옥시의 공식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자회견을 보이콧하기로 했다. 이들은 2일 옥시 영국 본사 임원 8명을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며, 앞으로 한국 법원이 영국 본사의 책임을 인정하면 영국에서 다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김준일·최혜령 기자
#옥시#사과#검찰#보이콧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