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메르스 절정기’ 투입 이동형 음압기, 의료용 아닌 석면제거 산업용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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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의료원 등 전국 병원에 대거 설치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의 한 병실에서 음압기 업체 직원들이 이동형 음압기를 거친 공기가 밖으로 나가는 배출구를 설치하고 있다. 앞쪽에 보이는 기계가 이동형 음압기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의 한 병실에서 음압기 업체 직원들이 이동형 음압기를 거친 공기가 밖으로 나가는 배출구를 설치하고 있다. 앞쪽에 보이는 기계가 이동형 음압기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문에 전국 주요 병원에 음압격리병실을 만들면서 산업 현장에서 쓰는 음압기가 대거 납품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음압기 중 일부 제품은 밖으로 내보내는 공기 일부가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배출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용 음압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30일 주요 병원과 음압기 제조업체 등에 따르면 지난달 국립중앙의료원과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전국 병원들은 총 150대 이상의 이동형 음압기를 구매해 병실에 설치했다. 메르스 확진자는 늘어나는데 국가 지정 입원병원의 음압격리병상은 105개 수준에 불과했던 상황에서 급히 찾아낸 대안이었다.

음압격리병실은 병실 안의 공기를 꾸준히 밖으로 빼내서 주변보다 낮은 기압을 유지하는 공간이다. 기압이 낮기 때문에 그 안의 병원균이나 바이러스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낮은 기압을 유지해주는 이동형 음압기는 병실의 공기를 계속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일반 병실을 음압격리병실로 만들기 위해 설치한 음압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설비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병원에 100대 이상이 납품된 것으로 알려진 A사의 제품은 석면 제거 작업장에서 주로 사용되던 제품이다.

음압기 설치 관련 문의에 이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 의료용 음압기의 별도 기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병원에 들어가니까 더 신경 써서 만들자고 한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기존의 제품을 의료용으로 사용해도 될지 의구심을 품기도 했지만 결국 그대로 납품했다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등에 설치된 또 다른 이동형 음압기는 생물안전밀폐실험실 관련 업체인 B사가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올해 새로 만든 제품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관련 업계에서는 의료용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동형 음압기를 사용하면 병실 안 공기의 일부가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갈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년간 음압기 제조업체에서 일했던 전칠식 대한자동차대기환경협회장(55)은 “음압기에 고성능 헤파필터를 장착하긴 하지만 음압기 내부에서 필터 옆으로 공기가 새는 제품이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음압기의 누설 여부 등을 검사하는 한국필터시험원 관계자는 “일부 제품은 누설 시험을 받지만 제조사가 직접 가져온 샘플 제품으로 실험하기 때문에 실제 판매되는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회사에서 인증을 받겠다며 가져오는 샘플 제품 중에서도 내부 누설이 확인되는 제품이 있다”며 “안전성이 중요한 의료용으로 쓰려면 필터 성능을 포함한 구체적인 음압기 성능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동형 음압기를 납품받아 병원에 설치하고 다른 병원에 공급하기도 했던 국립중앙의료원 측은 “음압기를 꼼꼼하게 검증하진 못했지만 음압기 때문에 메르스가 전파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음압을 잘 유지할 수 있는지와 헤파필터를 장착했는지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해 이동형 음압기를 설치했다”며 “메르스가 대기 중에 배출된 적은 양의 공기 때문에 전파될 위험이 있는 질병은 아니기 때문에 이동형 음압기를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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