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탄핵 내전’ 속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5일 0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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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서울 도심은 ‘촛불’과 ‘태극기’ 집회 참가자의 함성으로 뒤덮일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최후 변론기일로 정한 27일을 앞둔 집회라 사상 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라는 기치 아래 열리는 제17차 촛불집회는 민중총궐기대회를 겸해 치러질 예정이다. 보수 단체들은 ‘비상사태’라고 주장하며 ‘태극기가 지켜드리겠습니다’라는 집회에 전국에서 참석하도록 총동원령을 내렸다.

자칫 충돌의 조짐마저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에 전시해 물의를 빚었던 박 대통령 누드화를 내건 진보 진영의 한 카페엔 보수 단체 회원들이 몰려가 항의하고, 보수 진영의 카카오톡 단체방에는 ‘청년암살 살수단’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랐다.

4년 전 오늘, 박 대통령이 취임할 때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해방공간의 극심한 좌우 대립 양상이 재연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선서했다. 취임사에선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서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얻겠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주권주의를 1조로 규정한 헌법부터 준수하지 않았다. 권력을 사유화했으며 왕조시대를 방불케 하는 인치(人治)로 법치를 실종시켰다. 깨끗하지도, 투명하지도, 유능하지도 않았던 박근혜 정부에 국민은 깊은 좌절과 배신감을 느낀다.

지금 우리는 정치, 외교·안보, 경제, 사회통합 등 각 분야에서 6·25 이후 가장 심각한 복합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실패는 박근혜 정부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보수의 실패로 귀결됐다. 어제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문재인 안희정 안철수 이재명 등 진보 대선주자 지지율의 합은 69%인 데 비해 보수주자인 황교안 유승민의 합은 10%에 불과했다. 이 마당에 박 대통령이 실정만 한 게 아니라 공무원연금개혁, 통합진보당 해산 등 나름의 업적도 있다고 항변하는 것도 와 닿지 않는다.

국민도, 대통령도 불행해진 작금의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법치가 제왕적 대통령에 의해 무력하게 휘둘리는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선 또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못지않게 개헌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국가 대개조가 필요한 이유다.

탄핵심판이 선고되는 3월 10일경을 전후해 앞으로 한 달에 나라의 명운이 달렸다. 박 대통령은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어떻게 나라를 위한 충정을 보일지 고민해봐야 한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촛불과 태극기 세력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를 훼손하는 불행한 유산을 미래 세대에 물려주지 않도록 자중자애(自重自愛)할 필요가 있다.
#탄핵#박근혜#대통령 취임 4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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