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 대통령, 국정마비 상태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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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秘線)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이 드러난 이후 사실상 국정 마비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내부 기밀이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자체 조사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다. 민정수석실에서 나서야 하지만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부터 조사를 지휘할 처지가 못 된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어제 임시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었으나 “공직자는 일거수일투족에 신중하고 자중해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얘기에 그쳤다. 내년 예산을 심사해야 할 국회는 연일 최순실 의혹을 지적할 뿐 특검 도입에 합의하지 못했다. 대학가에선 교수와 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주말에는 촛불시위까지 벌어질 조짐이다.

  ‘최순실의 난(亂)’으로 불릴 만한 국정 농단으로 대통령의 자격론까지 나온다. ‘박근혜 정부’였는지, ‘최순실 정부’였는지 모른다는 말까지 돌면서 정부의 정통성까지 흔들리는 판이다. 헌법상 대통령책임제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다. 국정 농단의 전모는 그것대로 밝히되 이런 때일수록 냉철한 수습방안을 내놓는 것이 시급하다.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연일 ‘거국(擧國)내각을 구성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최소화하고 여야 합의로 새로 임명한 총리가 국정을 수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당 일각에서도 동조하는 소리가 나온다. 거국내각이란 야당이 내각에 참여해 국정을 함께 운영하고 야당이 용인하는 국무총리가 사실상의 행정부 수반을 맡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임기가 1년 4개월 남은 대통령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은 원칙적으로 현행 헌법체계와 맞지 않다. 총리와 대통령의 갈등, 내각 내 여야 각료의 반목으로 국정이 어디로 굴러갈지 모른다. 이 때문에 과거 정부에서도 말은 숱하게 나왔어도 헌정 사상 단 한 번도 구현된 적이 없다.

 정확한 진상 규명 없이는 어떤 거국내각이 들어서도 민심을 수습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야당이 주장하는 거국내각 자체가 정국 수습을 더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지만 그래도 박 대통령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먼저 진실을 숨김없이 밝히는 수밖에 없다. 최 씨의 국정 농단과 관련된 인사들이 수두룩한 청와대부터 전면 개편하고, 정국 수습용 개각을 단행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국민이 수긍하고,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인사를 발탁해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상의 ‘책임총리제’를 구현해 국정 운영의 상당 부분을 맡기는 것이 현 국면에서는 오히려 ‘비정상의 정상화’다.

 책임총리제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그제 새누리당의 청와대·내각 전면 쇄신 요구에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했다. 또다시 실기(失期)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박근혜#최순실#진상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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