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사 가이드라인’ 제시한 최순실의 수상한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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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피 중인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 유출을 제외한 모든 국정 농단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독일의 한 호텔에서 가진 27일자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전후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을 잘 아니까 심경 표현에 대해선 도움을 줬다”고 연설문 수정을 시인하면서도 국정과 인사 개입,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유용 의혹에 대해서는 “말이 안 된다” “기억이 없다”며 빠져나갔다. 박 대통령이 25일 대(對)국민 사과에서 밝힌 ‘범위’만큼만 잘못을 인정하는 치밀한 발언이다.

 지금까지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진 내용까지 부인한 최 씨의 발뺌 인터뷰에 국민의 분노는 더욱 끓어오르는 분위기다. JTBC에서 수정된 대통령 연설문 44건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도된 태블릿PC에 대해 최 씨는 “나는 태블릿PC를 쓸 줄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최 씨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 사실을 세상에 알렸던 고영태 더블루케이 이사가 “최 씨가 평소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며 연설문이 담긴 파일을 수정했다”고 말한 것과 어긋나는 내용이다.

 최 씨의 발언 속에는 의미심장한 ‘신호’도 엿보인다. 태블릿PC가 자기 것이 아니라면서도 “유출 경위를 검찰이 확인해봐야 한다”고 주장한 점은 2014년 말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논란이 불거졌을 때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은 국기(國基) 문란 사건’이라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던 것과 유사하다. 최 씨는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대해 “그들도 나를 알지 못할 것”, 정호성 비서관에 대해서는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해 향후 수사에 대비한 ‘답변 지침’을 주는 듯했다. 그의 사무실로 대통령 보고자료를 들고 왔다고 폭로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에 대해선 ‘5억 원을 달라고 협박한 미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러고도 최 씨는 “신경쇠약에 걸려 (한국에) 돌아갈 상황이 아니다”며 사실상 귀국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최 씨를 즉각 귀국시켜 어제 발족한 특별수사본부의 조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선 실세를 보호하려다 국민과 등진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
#최순실#박근혜#비선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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