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공천제는 당에 맡기고 국정에 전념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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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내년 총선 공천 방식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논의하는 특별기구를 5일 발족시키기로 했다. 여야 대표가 잠정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싸고 날 선 공방을 주고받은 당청(黨靑)도 잠정 휴전에 들어간 모양새다. 청와대는 그제 김무성 대표가 “이제 안심번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사실상 항복 선언으로 받아들인 듯, 앞으로 당내 논의 과정을 지켜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론에 ‘청와대’로 등장하는 대통령비서진은 이번 사태를 박근혜 대통령과 김 대표 간의 공천 주도권 경쟁이나 계파 간 지분 다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대통령 참모들이 일제히 나서 여당의 공천 룰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이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대변으로 보인다. 이미 정치권에는 박 대통령이 대구 등 텃밭에 꽂아 넣을 16명의 ‘희망둥이’ 직계 참모들 명단이 나돌고 있다. 총선 출마 의사가 있는 청와대 사람들은 즉시 사표를 내고 지역으로 내려가는 것이 옳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참모들을 대통령이 데리고 다니며 경력관리를 시켜주는 것은 국민 세금으로 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유엔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것을 신호 삼아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여당 대표를 타박한 것은 수직적 당청관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오죽하면 친박(친박근혜) 의원들 사이에서 “청와대가 굳이 나설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 나오겠는가. 만일 박 대통령은 공천권을 행사할 뜻이 전혀 없는데 참모들이 충성경쟁으로 나섰다면 대통령을 ‘계파 수장’처럼 보이게 한 책임을 져야 한다.

당청 간 의사소통이 업무인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는 여야 대표 회동 전에 관련 내용을 통보받고서도 청와대와 전혀 상의 없이 여야 합의를 이룬 것처럼 ‘진실 게임’ 양상으로 몰고 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전임 조윤선 수석은 7월 공무원연금 협상 때 당청 소통 미흡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 때처럼 청와대에 위기관리를 잘못하고도 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참모들만 가득한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공무원연금법 개정과 연계한 국회법 개악 때만 해도 국민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위해 ‘유승민 사퇴’의 무리한 대목을 그냥 넘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개혁 등 4대 개혁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당청이 공천권에나 골몰하는 모습은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 다음 주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혹여 ‘배신의 정치 심판’ 발언과 유사한 형태로 선거개입 논란을 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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