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통사 처벌하면 ‘규제악법’ 단통법 문제 감춰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방송통신위원회가 어제 ‘아이폰6 불법 보조금 대란(大亂)’의 책임을 물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이동통신 3사와 영업담당 임원을 형사고발하기로 했다. 출고가 78만9800원에 출시된 아이폰6가 이달 초 번개영업, 새벽영업을 통해 10만∼20만 원에 판매된 것은 이통사들의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보조금 조항 위반이라는 것이다. 최성준 위원장은 “이런 일이 반복되면 최고경영자(CEO)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까지 경고했다.

판사 출신인 최 위원장은 엄격한 형사처벌이 최선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장(市場)을 모르는 책상머리 판단이다. 더 싼값에 좋은 물건을 사려는 소비자의 욕구와 더 많이 팔려는 기업들의 생리는 몽둥이로 막을 수 없다. 오히려 보조금 상한액을 정해 자유로운 가격경쟁을 막고 사실상 담합을 조장하는 단통법이야말로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빼앗는 규제악법이다. 지금 인터넷에선 “싸게 판 게 죄라면 누리꾼 잡아가라”는 누리꾼들의 비판으로 뜨거울 정도다.

단통법으로 통신시장이 침체하자 아이폰6 판매를 기폭제 삼아 시장의 욕구가 터져 나온 ‘규제의 역습’이 아이폰 대란이었다. 경쟁적으로 엄청난 장려금을 뿌린 이통사의 책임도 작지 않다. 시행 한 달 만에 당국의 코앞에서 단통법을 비웃었으니 방통위로선 법의 무력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칼을 빼들 필요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잘못 만든 단통법의 문제점이 감춰지는 건 아니다. 정부 일각에선 이통사와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출고가를 내리고 있다며 “단통법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다”고 선전하지만 잘못 본 것이다. 법정관리로 현금이 급한 팬택이 ‘베가아이언2’를 반값에 팔고, 저렴한 중국 제품이 쏟아지면서 생긴 착시 현상일 뿐이다. 국회에는 보조금 상한제 폐지 등 단통법을 고쳐야 한다는 개정안 4건이 이미 발의된 상태다.

최 위원장은 “기술 발전과 시장 상황을 따라가지 않으면 법 제도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했던 취임사를 다시 꺼내 보기 바란다. 정부의 정책 실패를 이통사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단통법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한꺼번에 단두대로 올려 처리하겠다”는 섬뜩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잘못된 규제까지 껴안고 가겠다는 방통위는 이 나라 정부가 아니란 말인가.
#이통사#규제#단통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