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장이 제일 먼저 탈출해 젖은 돈 말리고 있었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8일 03시 00분


“안 돼 너무 심하게 기울어서 움직일 수 없어. 더 위험해, 움직이면.” “구조 중인 거 알지만 가능하면 밖으로 나와서….” “아니 아빠 지금 갈 수 없어.” 세월호에 탄 여학생이 아버지와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다. 이때가 16일 오전 10시 5분이었다.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은 선장과 승무원들의 지시를 성실하게 따랐다. 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차오를 때까지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10여 차례 방송 내용을 믿었다. 이들 중 많은 이가 지금 생사(生死)를 알 수 없다.

선장은 오전 9시 30분 배 밖으로 나와 9시 50분쯤 해경에 구조됐다. 다른 승무원들도 9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탈출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선장은 바닷물에 젖은 5만 원짜리와 1만 원짜리 돈을 말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배에 문제가 생기면 우선 비상경보를 울리고 승객들에게 객실의 구명조끼를 입은 후 모두 갑판으로 나오라고 안내방송을 하는 것이 ‘해상안전규정(Safety of Life at Sea)’의 기본”이라며 “세월호 승무원들의 대응은 상식 밖”이라고 했다. 선박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선장과 승무원들은 승객을 구조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선원법 10조는 ‘선장은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이전에 직업윤리로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배의 구조와 바다의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이다. 어떻게 아이들을 배 안에 남겨 놓고 자신들만 먼저 탈출할 수 있는가. 승객들을 구한 건 오히려 다른 승객들이었다.

홀로 아이들을 구하고 끝내 세상을 떠난 젊은 승무원 박지영 씨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은 선장을 비롯한 베테랑 승무원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는 공포에 질린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구해다 입혀주었다. 학생들이 “언니도 어서 나가야죠”라고 하자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선원이 마지막이야”라고 했다. 그는 끝내 차디찬 몸으로 발견됐다.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된 배를 사서 증축해 804명이던 승선자 수를 921명으로 늘렸다. 3주 전에는 승객 142명을 태운 이 회사 소속 배가 다른 배와 충돌한 적도 있다. 청해진해운이 승객의 안전은 내팽개친 채 무리한 구조변경과 운항으로 사고를 일으킨 게 아닌지 당국은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선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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