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파면당한 대통령, 근로자였다면 부당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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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3월 17일 11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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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사 안태은의 ‘직장에서 살아남기’ 꿀팁

구 기자> 지난주에는 정말 엄청난 일이 있었죠. 헌법재판소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잖아요.

안태은 노무사>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 발언하는 내내 ‘그러나’ ‘그러나’의 연속이라 혹시 탄핵이 인용되지 않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반전이었어요.

구 기자> 결국 인용이 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와 사저로 돌아갔죠. 직장인으로 치면 실업자가 된 건데요. 뉴스를 보다 궁금한 점이 생겨서 원래 다루려던 주제보다 먼저 이 내용을 다뤄볼까 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약 직장인이었다면 지금 이 상황을 ‘부당해고’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안태은 노무사> 조금 더 정확하게 비유하자면, 예를 들어 대통령이 근로자이고 주권자인 국민이 사용자라면 국민의 대표인 국회로부터 탄핵의결을 당했을 때 해고된 걸로 보는 것이고 헌법재판소가 구제 신청을 받은 것이라고 해야겠죠. ‘대통령 박근혜’가 아니라 ‘청와대그룹에 재직 중이던 직장인 박근혜 씨’였다면 해고 통보 시 몇몇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 부당한 해고였다고 주장할 수 있겠죠.

구 기자> 직장인들은 그 ‘몇몇 요건’이 궁금할 것 같은데요. 먼저 부당 해고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안태은 노무사> 해고의 부당성을 논하기 전에 회사에서 근로자를 해고한 사실이 있었는지 따져보는 게 우선이에요. 이 문제로 노무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이 20~30%는 되거든요. 권고사직과 해고를 구분하는 기준은 쉽게 생각했을 때 최종적으로 ‘회사를 나간다’라는 의사 결정을 내가 했느냐, 회사가 했느냐입니다. 일부 기업에서 근로자에게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해서 잘린 줄 알고 나가지 않았는데 나중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을 때 회사에서 “우리는 해고한 적 없다, 권고사직이었다”라고 나올 수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는 사직서를 절대 쓰면 안 되고, 문자로라도 “지금 해고하신 건가요?” “해고 예고수당은 언제 주시나요” 등의 기록을 남겨두는 게 중요해요. 제대로 된 회사라면 근로자를 다시 불러서 얘기를 하겠지만, 그런 액션이 없으면 회사가 해고를 인정한 거라고 볼 수 있겠죠.

구 기자> 부당하지 않은 해고가 되려면 어떤 절차를 지켜야 하나요?


안태은 노무사> 부당 해고가 아니려면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보해야 해요. 근로기준법에서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있고요. 여기에 덧붙여 취업규칙을 살펴보면 인사위원회, 징계위원회 규정 등이 나오는데 거기 있는 내용(해고 통보 기한, 소명 기회 제공 등)이 잘 지켜졌는지를 살펴봐야겠죠.

구 기자>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부당 해고라고 주장할 수 있나요?

안태은 노무사> 근로자를 해고하면서 소명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정말 중대한 절차상의 위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로자의 방어권을 완전히 박탈한 거니까요. 그런 경우에는 부당 해고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예를 들어 15일 전까지 징계위원회 출석을 통보하라고 했는데 14일 전에 통보했다면 이런 부분은 부당 해고인지 아닌지를 따져봐야 알 수 있죠.

구 기자> 노무 상담을 하면서 제일 많이 본 해고 사유가 무엇이던가요?

안태은 노무사> 사내 질서 문란으로 인한 징계. 대표적으로 근태가 불량하다거나, 상하급자와 싸웠거나, 폭행을 했거나 등이 있겠죠.

구 기자> 폭행은 사측에서 명백한 징계 사유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논란이 많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저성과자, 즉 일을 못해서 해고한다는 내용인데요.

안태은 노무사> 직장을 학교라고 생각해볼까요. 학생이 교내에서 폭력을 행사했거나 친구를 따돌렸다면 정학이나 근신 처분을 받잖아요. 하지만 공부를 못한다고 징계를 받지는 않죠.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구 기자> 그럼 근로자가 일을 못 한다고 자를 수는 없는 거군요.


안태은 노무사> 징계는 직장에서의 규율을 지키는 데 그 목적이 있어요. 해고는 최후의 수단이고요. 하지만 징계 대상이라고 해서 모두 해고 대상은 아니거든요. 그럼 저성과자가 과연 징계감이고 해고감인지 생각해봐야겠죠.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에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나와 있어요. 사회가 변화하며 정당함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추세죠. 한편으로는 영리 조직인 기업이 정말 일 못하는 사람을 언제까지 안고 가야 되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면 결국 공정하게 성과를 평가해야 하는데, 공정한 기준을 세우는 건 쉽지 않고 기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죠.

구 기자> 지금으로서는 법적으로 ‘일 못하는 사람’의 기준이 없다고 봐야겠네요.


안태은 노무사> 저성과자의 기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니까요. 객관적으로 저성과자임을 평가하려면 평가의 기간도 길어야 하고, 평가 요소가 공정한지도 봐야 해요. 개발자에게 영업을 몇 건 못 해왔다고 평가를 낮게 줘서는 안 되고, 결정적으로 저성과자라고 낙인찍었다면 바로 내보낼 게 아니라 배치전환을 하거나 교육을 시켜 성과를 높일 기회를 줘야 해요. 그렇게 했는데도 못한다면 해고가 가능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단순히 ‘너 일 못하니까 그만둬!’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구 기자> 그럼 부당 해고라고 생각할 때에는 어디에서 구제받을 수 있나요?

안태은 노무사> 공식적인 구제 절차 기관은 노동위원회예요. 이곳에서는 해고뿐 아니라 징계, 부당정직, 부당전보 등에 대해 다루는데 중요한 건 해고당하기 전에 사내 징계위원회 등에서 제대로 소명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법원 가서 해결하겠다고 하고 소명을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엄청 꼬여요. 회사에 있는 동안 어떻게든 증거와 증인을 확보해야 해요. 회사에서 나를 깎아내릴 경우 반박할 만한 녹취 파일이나 문자를 가진 것도 중요하겠죠.

구 기자> 만약 대통령이 근로자였다면, 노동위원회를 찾아가서 부당 해고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군요.

안태은 노무사> 하지만 대통령은 근로자가 아니라서 그럴 일은 없겠죠.

구 기자> 대통령은 근로자가 아닌가요?

안태은 노무사>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에 따르면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해요. 직업 공무원은 큰 의미에서는 근로자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게 아니라 특별법인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을 적용받아요. 선출직 국회의원과 대통령 등은 근로자라고 보기 어렵죠. 근로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인데 돈 벌려고 대통령 하는 거, 아니잖아요.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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