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측하게 팬티만 입고 뛰는 사람” 장모님 반대 넘어선 허정무-최미나 부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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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최미나 부부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아내 최미나 씨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허정무 최미나 부부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아내 최미나 씨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렇게 고집 센 사람이 또 있을까. 정말 놀랐어요.”

지쳐서 돌아온 남편은 무뚝뚝하기만 했다. 모처럼 이어진 대화가 말다툼으로 이어지는 일도 잦았다. ‘남들은 결혼하면 깨가 쏟아진다던데….’ 아내는 갓 태어난 큰 딸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한국이었다면 친정에 가거나 친구라도 만났겠지만, 말도 안 통하는 이역만리 땅 네덜란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참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을 때 최 씨는 깨달았다. ‘성격 맞추기 게임’이 드디어 끝났다고.

한국 최초의 스포츠-연예 스타 커플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64)와 최미나 윌러스 대표(65·본명 최종숙)가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어느 날이었다. 연세대 2학년이던 허 씨는 한국 축구의 기대주로 떠오르던 중이었고, 최 씨는 국내 첫 ‘여성 MC’로 활약하던 때였다. 최 씨가 임성훈 MC(69)와 함께 진행하던 ‘가요올림픽’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허 씨가 게스트로 초대됐다. 형식적인 인사만 나눴던 두 사람은 3년 뒤 방송사 스포츠기자였던 최동철 씨(76)가 집으로 초대해 ‘소개팅’을 주선한 덕분에 다시 만났다.

“인상은 좋았지만 한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날 헤어지면서 ‘연락해도 될 까요’ 했더니 ‘그러세요. 전화 하세요’라며 연락처를 알려 주더라고요.”(허)

나름 ‘약속’이라고 생각한 허 씨는 며칠 후 전화를 했다. 통화는 되지 않았다. 당시 최 씨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6, 7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몇 차례 더 전화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너무 화가 났어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죠. 오기로 전화를 계속 하다 결국 연결이 됐어요. ‘싫으면 처음부터 싫다고 하지. 왜 약속을 했느냐. 그렇게 살지 마라’ 했더니 ‘미안하다, 만나자’고 하더군요.”

며칠 뒤 최 씨가 일하는 방송국 근처 커피숍에서 둘은 만났다. ‘수틀리면 망신이나 주고 와야지’라는 생각으로 나갔던 허 씨는 너무 미안해하며 사과를 하고, 방긋 웃으며 얘기를 건네는 최 씨에게 매력을 느꼈다. 첫 만남 뒤 3년 새 당대 최고의 축구-연예 스타로 성장한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했다.
허정무 최미나 부부.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허정무 최미나 부부.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팬티만 입고 뛰는 사람” 반대를 넘어

대학을 졸업한 허 씨는 실업팀 한국전력에 잠시 몸을 담았다. 그는 그곳에서 받았던 첫 월급이 10만5000원이었다고 기억했다. 최 씨의 월 평균 수입이 300만 원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프로축구도 출범하기 전이었고, 최 씨는 결혼하면 방송 활동을 그만 둘 계획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없었을까.

“축구를 못하면 배추 장사를 해서라도 가족은 지키겠다고 하더라고요. 믿음이 가더군요. ‘그래도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축구를 열심히 하라’고 했어요. 내가 모아놨던 것도 있고, 앞날에 대한 걱정은 없었습니다.”(최)

“아내는 좋다고 했지만 장모님은 결혼을 반대 하셨어요. 아내에게는 언니 둘이 있는데 각각 의사, 교수와 결혼했거든요. 이 사람에게 그러셨대요. ‘사람들 많은 데서 망측하게 팬티 바람으로 뛰는 사람과 왜 결혼을 하느냐’고. 해병대 시절 인사 차 집을 방문했을 때는 ‘세탁 맡길 것 없다’며 장모님께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짧은 머리에 운동복을 입은 내가 세탁소 점원처럼 보였던 거죠.”(허)

아내가 믿었던 대로 허 씨는 불세출의 축구 스타가 됐다.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남편은 1980년 7월 결혼식을 올린 뒤 닷새 후 네덜란드로 떠났고, 얼마 있다 아내도 합류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차범근(66)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유럽 무대를 밟은 허정무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한국 축구를 유럽에 알리는데 기여했다. 3년의 유럽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프로축구 울산에서 3년을 더 뛴 뒤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지금까지 유일무이한 ‘월드컵 해외 대회 16강 진출’(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이끌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결혼은… 서로의 곤경을 같이 치러주는 것

결혼 후 가사와 육아에 전념했던 최 씨는 1990년대 후반 사업을 시작했다. 축구계를 잠시 떠나있던 남편이 모았던 재산을 모두 투자해 운영했던 공장이 화재로 날아간 데다, 살던 집까지 보증을 서는 바람에 거리에 나앉을 신세가 됐던 게 계기였다.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려고 보증을 부탁한 사람의 집을 계속 찾아 갔어요. 어느 날 동생과 둘이 그 집의 추운 거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문득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차라리 이 시간에 돈을 벌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최)

“집 문제를 해결한 뒤 아는 분으로부터 내 명의로 4000만 원, 이 사람 명의로 4000만 원을 빌렸어요. 그걸로 아내가 사업을 시작한 거죠. 이 사람은 어릴 때 꿈이 조향사였을 정도로 향수를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집에서 모든 일을 아내 혼자 다 하며 많이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사업이 잘 되고 있는 편이에요.”(허)

최 씨는 사업이 한창 성장하고 있을 때 2년 동안 ‘휴업’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감독을 맡고 있을 때였다.

“축구 관련 기사 댓글을 보다 깜짝 놀랐어요. ‘남편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인데 아내는 수입 향수를 팔다니 말이 안 되다’는 내용이었죠. ‘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구나’ 하면서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 사업을 중단했죠. 남편한테 누를 끼치기는 싫었거든요.”(최)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결혼은 서로의 곤경을 같이 치러주는 것’이라고.

부부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의 한 주택에서 둘이 지낸다. 함께 살던 두 딸은 모두 결혼을 해 집을 나갔다. 막내딸도 출가한 뒤 현재 사는 곳을 전세로 놓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가 2년 반 만에 돌아왔다. 딸들의 결혼과 함께 ‘불어난 식구’들이 놀러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커서였다.

“이 사람이요, 정말 가족밖에 몰라요. 손자, 손녀들과 놀아주는 걸 보면 어떻게 이런 할아버지가 다 있나 싶어요. 딸 둘에게도 정말 잘했어요. 아빠, 할아버지로서는 100점이죠. 남편으로서는? 글쎄요. 점점 나아진 것 같아요. 결혼 초기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그 고집도, ‘아, 이런 고집이 없다면 운동선수로 성공하지 못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를 하니까 싸울 일도 줄더라고요.”(최)

“어릴 때부터 가족의 소중함은 잘 알고 있었어요. 이 사람한테도 해 줄 건 다 해준 것 같은데…. 아닌가? 하긴 절대 하지 말라는 보증도 서는 등 잘못한 것도 있네요. 지금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내를 보며) 그러니 기분 나쁘고 괴로울 때 나한테만 화내지는 말아줘.(웃음)”(허)

‘고집 센 남편’이 외식을 고집하는 까닭은

부부는 외식을 자주 한다고 했다. 요즘 남편이 아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뭐 먹고 싶어?’다. 요리를 잘하는 최 씨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려고 하면 허 씨는 “나가자”며 손을 잡아끈다.

“집에서 밥 먹으면 준비 하는데도, 치우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려요. 그렇다고 돈을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몇 천 원짜리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밖에서 먹으면 여러모로 편하죠.”(허)

“돈을 아낀다고요? 그건 절대 아니죠. 외식을 하면 가족, 후배, 지인 등 여러 사람 불러 같이 먹거든요. 지금까지 살면서 남편은 한 번도 음식 타박을 한 적이 없어요. 반찬이 많으면 되레 뭐라고 하죠. 집에서 먹지 말자는 건 제가 힘들까 봐 그러는 거예요.”(최)

이 부부와 친분이 두터운 탤런트 김수미 씨(70)는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해 “두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러워 슬퍼질 정도다. 정말 잉꼬부부”라고 말했다.

남편의 습관 가운데 하나는 ‘잠깐 신은 양말 다시 신기’다. 아내는 ‘1시간을 신어도 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애 아빠가 옷차림에는 전혀 신경을 안 써요. 집에서 입던 차림 그대로 외출하고, 사람들도 만나죠. 돌아와서도 빨래를 잘 안 내놔요. 양말은 침대 밑에 숨겨 놓고….”(최)

“아내가 일을 과하게 하는 편이에요. 못 같은 것도 본인이 박아요. 내가 하면 힘만 써서 망가뜨린다나. 오죽하면 딸들이 엄마 생일에 ‘공구 세트’를 선물했겠어요. 그러니까 나라도 일 줄여주려고 빨래를 안 내놓는 건데 그것도 몰라주나.”(허)

어떻게든 아내의 일을 줄여주고 싶으면 빨래부터 직접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허 씨는 “세탁기도 못 돌린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최근 남편은 잠깐 신은 양말을 또 숨겨 놨다가 아내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화란이 아빠, 제발 말 좀 들어요. 나중에 나 없으면 큰일 나겠네.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라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나도 바로 당신 따라 갈 거니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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