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벤투가 강조한 ‘기술’과 8인제의 가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9월 20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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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벤투 감독. 스포츠동아DB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벤투 감독. 스포츠동아DB
월드컵축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기술의 차이다. 많이 따라붙긴 했지만 우리 선수들의 기량은 아직도 상대에 비해 부족하다. 축구경기는 공격이든 수비든 상대와 일대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이길 확률이 높다. 조직력이 월등하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누가 뭐래도 승부의 제1 요소는 개인기량이다.

2018러시아월드컵의 키워드는 체력과 역습이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선 수비, 후 역습’이 유행했다. 그런데 이런 전술도 결국은 선수 개개인의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기술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다. 어릴 때부터 온 몸으로 익혀야한다. 놀이를 통해 볼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응용력을 키워야 향상된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이 ‘어릴 때’이다. 무엇보다 유소년부터 제대로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올 4월 열린 수원JS컵에서 정정용 19세 이하(U-19) 대표팀 감독은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던 베트남과 1-1로 비기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자 개인기 향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체력과 조직력은 한계가 있다. 압박 속에서 냉철하게 할 수 있는 개인능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동남아축구는 8인제와 풋살 등 볼 터치를 많이 하고 일대일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 지상주의이기 때문에 개인 능력을 발전시키기 쉽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나는 그가 우리 유소년축구의 현실을 예리하게 꼬집었다고 본다.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기술 있는 선수를 만들 수 있도록 한국축구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만약 구조적 문제가 계속된다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최근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지향점도 비슷하다. 그는 국가대표 선발의 제1 조건으로 기술을 꼽았다. 9월초 첫 소집 때는 기술과 다양한 포지션 소화능력을 언급했다. 칠레와 평가전(11일)이 끝난 뒤에는 기술과 함께 간절함을 더했다. 아시안게임을 보고 선발한 황인범과 김문환에 대해 “뛰어난 기술과 선수로서의 자질을 갖췄다”고 평가한 건 그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일련의 발언들은 앞으로 기술 가진 선수를 뽑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이들 전문가 발언을 종합해보면, 한국축구의 성장이 더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기술 향상 없이는 축구 강국이 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변해야한다. 기존의 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한다.

8인제 축구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일이나 스페인, 네덜란드 등 축구선진국에서는 8인제가 보편화되어 있다. 심지어 5~9인제 등으로 다양하다. 독일 출신의 미하엘 뮐러 대한축구협회 수석 지도자 강사가 “경기에는 모든 연령의 선수가 뛰어야하고,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경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 점을 되새겨야한다.

대한축구협회는 8인제를 꾸준히 연구해왔다. 올해는 몇몇 지역에서 시범대회를 열었다. 2018화랑대기 유소년대회에서 245팀이 참가한 U-12 대회에 8인제가 도입됐다. 내년부터 축구협회 주관의 초등리그에 적용한다.

8인제는 빠른 플레이 유도와 창의적인 플레이가 목적이다. 우선 경기장 규모가 작다. 최대 엔트리는 18명이다. 교체된 선수도 다시 들어갈 수 있다. 골키퍼만 아니면 심판 허가 없이 교체가 이뤄진다. 골킥은 하프라인을 넘으면 안 된다. 킥오프 때 슈팅하는 것도 금지다.

8인제의 효과는 확인됐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9월 초등학교 선수들을 대상으로 8인제가 11인제보다 볼 터치, 패스, 슈팅, 달리기 횟수를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전술적으로 빠른 공수전환과 일대일 상황 및 골문 앞 기술 향상이 이뤄진다. 기술적으로는 패스와 드리블 횟수, 볼 터치 횟수가 늘어난다. 체력적으로는 고강도 액션을 포함해 11인제보다 더 많이 뛴다. 아울러 공간 지각 능력과 상황 판단 능력이 좋아진다.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기술 발전을 위한 목적은 공감하지만, 성적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쉽지 않다는 지도자 의견도 있다.

여론을 무시할 순 없지만 한국축구가 나아갈 방향이 옳다고 판단되면 강력하게 밀어붙여야한다. 8인제 도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도자다. 전술운영이나 포메이션 변화가 불가피해 지도자가 이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해야 정착될 수 있다. 그래서 지도자 교육이 우선이다.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월드컵을 볼 때마다 답답했던 마음이 당장 해소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제도가 정착되고, 선수가 적극 참여하고, 지도자가 능력을 발휘한다면 선진축구로 가는 초석은 다질 수 있다고 믿는다.

때 마침 벤투 감독을 비롯해 김학범(U-23)·정정용(U-19) 감독, 김판곤 위원장이 20일 오전 상견례를 갖는다. 선수 정보공유와 선수 차출 때의 교통정리 등이 화제가 될 것이다. 부탁하고 싶은 건, 한국축구의 비전도 거론했으면 한다. 이날 참석자들이 하나같이 기술을 강조한 지도자들이어서 그들의 논의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지혜를 모아보자.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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