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외교도 ‘푸틴의 축구공’ 따라 움직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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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러 월드컵 계기로 국제 고립 탈피 ‘진짜 승리’ 노려

“스포츠와 정치는 섞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와 협력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러시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은 월드컵 개막 하루 전인 13일 모스크바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대표단과 만나 “전 세계 축구 팬들이 러시아의 친절과 따뜻함, 다민족 문화 정신을 함께 즐기고 다음에 또 방문하기를 바란다”며 웃었다. 손님맞이 준비를 모두 끝낸 푸틴 대통령의 여유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 기간 중 외국인 150만 명이 러시아를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12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절 2018 월드컵 유치권을 거머쥔 이후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고립의 길을 걸었다.

스트롱맨의 원조 격인 푸틴 대통령은 2012년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한 이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 편에 서서 시리아 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미국과 대립했다. 또한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해 서방으로부터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논란에 이어 올 3월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스파이 독극물 살해 시도 배후로 지목되면서 서방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영국 등에서 “러시아 월드컵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 월드컵 개막이 현실화되면서 러시아의 국제적인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푸틴 대통령에게 득이 되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유럽 등 전통적 동맹국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러시아의 몸값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4년 이후 러시아를 빼고 진행했던 G7 정상회의에 러시아 복귀를 추진 중이고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먼저 제안하고 있다.

여기에 포퓰리즘 바람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 친러 성향의 정권이 연이어 탄생했다. 전통 우방인 중국과의 관계가 돈독해진 것도 러시아에는 큰 힘이 되고 있다.

2014년 서방의 경제 제재로 한때 폭락했던 루블화도 점차 안정화되는 분위기다. 또한 지난해부터 유가가 오르면서 러시아 경제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3일 “앞으로 한 달 동안 러시아는 서방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시도가 실패했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의 월드컵 개막전 상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생산량과 재고를 줄이며 러시아와 찰떡 공조를 보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함께 개막전을 관람할 계획이다. 개막식에는 옛 소련 국가들과 레바논 볼리비아 르완다 파라과이 등 제3세계 정상이 주로 참석하고 서방국가들은 불참한다. 북한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한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0일 “월드컵 기간 러시아를 방문할 수 있다”고 밝혔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프랑스가 결승전에 오를 경우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말해 서방 지도자들의 월드컵 관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지구촌 외교#푸틴#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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