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의 길을 묻다] ⑦ 한국축구 레전드 차범근 전 감독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5월 18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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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러시아월드컵 현장을 찾아 후배들을 응원할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승패를 떠나 사력을 다하는 태극전사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래서 행복과 희망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택에서 애견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차 전 감독.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2018러시아월드컵 현장을 찾아 후배들을 응원할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승패를 떠나 사력을 다하는 태극전사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래서 행복과 희망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택에서 애견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차 전 감독.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차범근(65)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최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만났다. 한국스포츠 전반에 관한 담론이 주된 주제였지만 역시 축구 얘기가 빠질 수 없었다.

2018러시아월드컵 개막이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예년만 못한 탓인지 월드컵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다. 차 전 감독은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현장에서 축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삶에 있어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부상자가 많아서 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많이 힘들 것 같다. 우리 선수들이 상대가 강팀이니까 기죽어서 못하고, 또 다른 어떤 이유로 질타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매 경기 90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뛰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들었으면 좋겠다. 이기고 지는 건 두 번째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그런 마음으로 운동장에서 뛰고, 선수들이 실제로 그런 얘기를 듣게 된다면 우리 축구가 희망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차 전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얘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독일에서 돌아와서 감독을 하면서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자신이 가진 걸 다 쏟아내지 못해 늘 아쉬움을 느꼈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만은 달랐으면 한다.”

국가대표 선수 시절 차범근(오른쪽). 사진제공|FIFA
국가대표 선수 시절 차범근(오른쪽). 사진제공|FIFA

쓴 입맛을 다신 그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선수들이 합심해서 뛰고, (결과를 떠나)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느낀다면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러면 우리 축구가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그 다음이 제도적인 뒷받침이다.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이기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면 우리 팬들이 공감해 줄 것이다. 공감을 얻어야 발전의 동력이 생긴다”고 힘주어 말했다.

차 전 감독은 월드컵에 나서는 한국축구의 선전도 기원하지만 월드컵이라는 무대 자체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는 대회 기간에 러시아를 직접 방문해서 월드컵 경기들을 지켜볼 계획이다. “월드컵은 그 시대의 축구 흐름과 최고의 선수들을 볼 수 있는 무대다. 늘 기대가 된다. 기다려진다. 감동이 따라오지 않나. 보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겁다”라고 했다. 이어 “월드컵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희망이 있고, 흥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다시 태극전사들을 떠올렸다. ‘희망’을 위한 응원이었다. “요즘 뛰는 아이들은 다 내 자식 같고, 가족 같다. 잘 안 되서 비난받으면 안타깝다. 너무 비난받으면 내가 울타리가 돼 주고 싶다. 일종의 본능 같은 거다. 우리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자. 누구나 실수하면서 성장했다. 나도 선수 시절 내면에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월드컵과 같은 무대에서 강한 상대를 만나면 경기하기 전에는 ‘창피를 당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잘 한다’라고 하니 마냥 잘 하는 줄 알았다. 겁 없이 뛰다보니 결승골도 넣고, 실력보다 더 잘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실력도 커 나갔다. 완벽한 선수는 없다. 수학공식처럼 되는 인생도 없다. 부족하니 실패를 겪으면서 성공하기 마련이다. 스포츠는 더더욱 그렇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면 힘을 갖게 된다. 자식을 키울 때도 때로는 맘에 안 들어도 질책하지 않고 기를 세워주기도 한다. 너무 기를 죽이면 의기소침해 질 수 있다. 그래서 난 더 칭찬해고, 응원해주는 해설을 했다. 이번에도 국민들이 더 많은 응원을 보내줬으면 좋겠다.”

차범근.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차범근.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차 전 감독은 축구의 레전드이기도 하지만 한국 스프츠계의 큰 어른이기도 하다. 축구에 한정돼 한국체육을 바라보지 않는다. 세 자녀의 아버지이자 손자손녀를 둔 할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체육교육에 관해서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일찌감치 독일이라는 스포츠선진국에서 다양한 시스템을 경험한 터라 이 부분에서 만큼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독일은 내가 있었던 1970~1980년대부터 어린 아이들이 모든 스포츠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이 마련돼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그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독일에 체류할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돈의 문제를 떠나 어린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그 사회의 역할이다. 독일은 그 자체가 잘 되어 있다. 한국은 아이들에게 너무 공부만을 강조하는 것 같다. 삶에서는 다양화가 중요하다. 많은 경험을 해봐야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다양성을 갖게 해줄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차범근.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차범근.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스포츠 등 문화생활을 통해 재충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의 다양한 경험은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삶의 활력소라고 생각하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 중 스포츠와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위한 용기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이 사회적 시스템으로 갖춰지면 더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들이다. 꽃을 잘 피우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잘 뒷받침 되어야 하지 않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을 통해 좋은 느낌을 받으면 살아가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삶의 질도 한층 높아진다. 그게 바로 재충전이라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차 전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가 “나처럼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공헌에 더 기여를 했으면 한다. 사회공헌 프로젝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업과 자본가들이 더 도와줬으면 한다. 독일에서 선수로 생활하면서 보고 느낀 점이 있어 축구교실 등으로 사회공헌을 실천하고 있다. 더 해주지 못해 아쉬움은 있는데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 분야 후진들에게 나눠주고, 공급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사회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데 더 해야 한다”며 이른바 ‘셀럽’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사회공헌활동 참여도 강조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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