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이장미 “어머니 덕분에 열 번의 수술 견뎌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월 9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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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지도자로 새롭게 출발을 준비하는 이장미. 사진제공 ㅣ 이장미
은퇴 후 지도자로 새롭게 출발을 준비하는 이장미. 사진제공 ㅣ 이장미
이천대교서 은퇴…지도자로 제2인생 꿈꿔

“그냥 선수 때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지내요. 친구들도 만나고, 피부과도 다니고.”

근황을 묻는 질문에 환한 미소가 되돌아왔다. 이천대교 여자축구단의 미드필더 이장미는 2017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2004년 AFC U-19 여자 챔피언십 우승, 2009년 WK리그 원년 득점왕과 MVP 등 지소연보다 한 세대 앞서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었던 그에게 다소 걸맞지 않은 조용한 은퇴였다.

얼마 전 3급 지도자 강습회에 다녀온 이장미는 “결과 문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발표를 잘 못해서 자신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가 지도자의 꿈을 꾸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어린 선수들이 처음 부상을 당하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경험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강습회를 신청했다.

그는 스스로를 ‘부상으로 기량이 발전하지 못한 선수’라고 칭했다. 그의 커리어는 대학 시절부터 은퇴하는 순간까지 부상과 싸우며 흘린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다. 2010년 FFC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며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을 때도 무릎 부상이 악화되는 바람에 6개월 만에 돌아와야 했다.

선수 시절 이장미. 스포츠동아DB
선수 시절 이장미. 스포츠동아DB

무릎에 칼을 댄 것만 열 차례. 매 순간이 축구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장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의 존재였다. 전도유망한 탁구선수였던 어머니는 가정형편 탓에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건강 악화로 사랑하는 딸의 모습을 경기장이 아닌 병상에서 TV로 지켜봐야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장을 누비는 이장미를 볼 때면 어머니의 건강도 호전됐다. 이장미는 “어머니의 몫까지 뛴다고 생각하니까 포기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부상이 그에게 시련만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저밖에 몰랐어요. 말수도 없고 성격도 독하니까 후배들이 무서워했죠.” 다치고 일어서기를 수없이 거듭한 지금에야 비로소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시야를 얻었다.

“후배들이 저보고 잘 다쳤다고 그래요. 옛날에는 진짜 싫었는데 다치고 나서 사람 됐대요.”

롤러코스터 같았던 그의 선수 인생은 마침내 종착역에 닿았다. 소회를 묻자 그는 여기까지 온 자신이 대견하다고 대답했다. “너무 많이 다쳐서 내 몸한테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자신을 이끌어 준 은사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고 김창기 감독님, 정상국 감독님, 백종철 감독님, 윤수진 감독님, 고 최추경 감독님, 안익수 감독님, 박남열 감독님, 김상태 감독님, 그리고 신상우 감독님.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윤지영 스포츠동아 대학생 명예기자 kksoh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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