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피플] 월드컵 4강신화 ‘마지막 현역’ 현영민 은퇴…“후회없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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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2월 28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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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진 않았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끝을 알 수 없는 인생, 그러나 현영민은 당당한 마무리를 선택했다. 26일 전남 구단을 찾아
 작별인사를 건넨 그는 당분간 평범한 일상을 보낸 뒤 축구인생 2막을 올릴 참이다. 스포츠동아DB
화려하진 않았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끝을 알 수 없는 인생, 그러나 현영민은 당당한 마무리를 선택했다. 26일 전남 구단을 찾아 작별인사를 건넨 그는 당분간 평범한 일상을 보낸 뒤 축구인생 2막을 올릴 참이다. 스포츠동아DB
전남과 계약만료…K리그 15시즌 마쳐
“마지막이 중요…이제 멈춰야할 때다
지도자·축구행정가 등 인생2막 고민”


황소처럼 우직했다. 곁눈질을 한 적도, 한눈을 판 기억도 없다. 일상도 지극히 단조로웠다. 새벽부터 운동에 매달렸고, 어쩌다 짬이 날 때면 습관처럼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영화관을 찾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지식을 채웠다. 물론 어학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마지막 멤버가 초록 그라운드를 떠난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남 드래곤즈의 베테랑 수비수 현영민(38)이 2017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15년 전 한국축구에 찬란한 역사를 안긴 태극전사 23인 가운데 유일하게 올해를 현역으로 소화했던 그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2월 31일부로 소속팀과의 계약이 만료돼 FA(자유계약선수) 신분을 취득한 912명을 19일 공개했다. 이 가운데 연령 초과로 별도 보상금 없이 이적이 가능한 선수는 총 7명. 현영민이 여기에 해당됐다.

국가대표 시절 현영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국가대표 시절 현영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정확히 일주일 뒤 ‘선수 현영민의 마지막’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크리스마스 여운이 가득한 26일 전남 광양의 클럽하우스를 방문해 2014년부터 4년 간 동고동락한 구단 식구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물론 좀더 뛸 수 있었다. K리그 몇몇 클럽들이 숱한 경험을 쌓아온 베테랑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이 떠날 타이밍으로 봤다. 무리하고 욕심 부리다 추하게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슬프지 않다. 후회 없이 뛰었다. 누구든 마지막이 중요하다. 언젠가는 꼭 경험할 (은퇴의) 순간이 엊그제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2014년 2월이었다. 성남FC를 떠나 갓 전남 유니폼을 입은 현영민에게 ‘은퇴’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멈출 때가 되면 스스로 멈추겠다. 떠밀리듯 사라지고 싶지 않다. 몸이 안 된다고 느낄 때 당당히 ‘이제 스톱’을 밝히고 싶다”였다. 실제로 당당했다. “선수로 뛰는 한 후배들에게는 항상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는 형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처럼 충분히 아름다운 축구인생 1막을 보냈다. 2002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데뷔한 그는 2010년부터 FC서울에서 활약했고, 2013년 성남FC를 거쳐 이듬해 전남으로 이적해 지금에 이르렀다. 15시즌, K리그 통산 437경기에서 9골·55도움을 올려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대기록을 썼다.

FC서울 시절 현영민. 스포츠동아DB
FC서울 시절 현영민. 스포츠동아DB

자신과의 약속도 지켰다. 측면 수비수로서 훗날 ‘현영민이라는 좋은 선수가 있었지’라고 회자되겠다는 다짐이다. 골 욕심, 공격 포인트를 향한 열망보다 모두의 갈채를 받는 좋은 선수를 희망했던 현영민은 이제 모든 짐을 덜고 인생의 제2막을 힘차게 열어 젖혔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아 오히려 걱정이란다. 선수로 가능한 B급 지도자 자격증은 오래 전에 취득해 언제든 프로 사령탑의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축구 해설가와 프로구단 행정가 등도 고민 중이다. 최근에는 심판의 길에도 입문했다. 다만 남은 12월까지는 다음 스텝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자녀들의 등·하교를 돕고 장을 보고 커피숍에서 여유를 부리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평범한 아빠·남편의 삶을 만끽하려 한다.

“언제 이런 호사를 또 누려보겠나.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다. 정말 뭘 하게 될지는 내년 초부터 진득하게 고민하겠다.”

전남 구단은 내년 3월 광양전용경기장에서 치러질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에 현영민과 가족을 초청해 공식 은퇴행사를 열기로 결정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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