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피플] 경남 말컹, 열정 하나로 완성한 ‘코리안드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5시 45분


코멘트
농구선수를 꿈꿨던 말컹은 우연한 기회에 축구를 접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무명의 축구 유망주는 경남FC의 간판선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코리안드림을 완성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농구선수를 꿈꿨던 말컹은 우연한 기회에 축구를 접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무명의 축구 유망주는 경남FC의 간판선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코리안드림을 완성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17세까지 농구선수→브라질선 월급 19만원 축구선수→K리그 챌린지 22골→中 클럽서 45억 러브콜

챌린지 득점왕 유력한 경남 말컹

축구 반대하던 아버지 경남행 후 팬 변신
김종부 감독 헌신적 지도 기량 일취월장
‘돈이 아닌 스토리를 쓰고싶다’ 굳은 결심
아이파크전 부상 불구 2골 1부 승격 선물


10월 8일 창원축구센터. 부산 아이파크와 K리그 챌린지(2부리그) 홈경기 하프타임. 경남FC 라커룸에서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부상당한 무릎에 테이핑을 해주려는 의무 스태프와 이를 피하려는 말컹(23·브라질)의 충돌이었다. 결국 선수가 이겼다. 전반 1골을 넣은 그는 이를 악물고 뛴 후반전에도 1골을 추가, 팀에 2-0 승리와 함께 사실상 클래식(1부리그) 승격을 선물했다. “부산이 내가 부상을 입었다는 걸 몰라야 하지 않겠나. 다친 걸 알면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

그랬다. 최고의 ‘한국형 용병’으로 꼽히는 말컹은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을 위해 언제라도 헌신할 준비가 돼 있었다. 현재 22골로 득점왕 등극이 가장 유력하기도 하나 경남이 우승했다는 것이 훨씬 의미가 컸다.

처음부터 축구선수를 꿈꾼 것은 아니다. 12세 때 브라질 명문 상파울루 유소년 팀에 잠시 몸담기도 했지만 농구 지도자 아버지의 권유로 농구를 했다. 그런데 17세 때 뜻하지 않은 순간이 닥쳤다.

동네 친구가 “머리도 식힐 겸 축구나 하자”는 제안에 응한 것이다. 일종의 오디션이었다. 동네축구인줄 알았는데 입단 테스트였다. 상파울루 주 리그에 속한 이투아노 구단주가 현장에 있었다. 월급 100헤알(약 3만5000원)을 제안했다. 6개월 만에 프로계약을 했다. 최저 월급여 540헤알(약 19만원)에 사인했다.

오래 전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에 크게 화를 냈다. 미국대학에 진학시켜 프로농구(NBA)까지 진출시키려는 꿈이 수포로 돌아간 탓이다. 아버지의 분노가 줄어들기 시작한 건 올 초 임대 신분으로 경남에 입단하며 한국행을 택했을 때였다. “가장 열성적인 팬이 되셨다. 내가 출전하는 경기는 항상 인터넷 생중계로 보신다. 경기 후 이런저런 조언을 해줄 만큼 열혈한 모니터링 요원이 됐다.”

경남에 처음 왔을 때는 막막했다. 낯선 환경과 문화에 쉽게 녹아들기 어려웠다. 그런데 첫 훈련부터 확신이 섰다. 시차적응도 덜된 상태에서 가진 전체 러닝을 마친 뒤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김종부 감독이 다가와 어깨를 감쌌다. “괜찮다. 시간은 길다. 서둘지 마라.”

경남FC 말컹.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경남FC 말컹.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믿음이 생겼다. 말컹은 “그 때가 올 시즌 전체를 결정했다. 스토리를 쓰고 싶었다. 돈보다 내 흔적을 강렬히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기본부터 시작해 이방인 제자를 지도했다. 슛 템포와 동료 활용 플레이, 상대의 방어를 피하는 방법 등 집중레슨을 했다.

체력훈련은 고통스러웠지만 하루하루 성장하는 스스로를 보며 행복했다. 스승이 말컹에게 경기 도중 화를 낸 것은 딱 한 번. 9월 대전 시티즌과 홈경기였다. 하프타임 때 한바탕 헤어드라이어(선수들이 감독에게 크게 혼날 때 쓰는 표현)를 맞은 뒤 후반 2골을 몰아치며 역전승을 이끌었다.

말컹은 부산전 직후 구단에 선물 하나를 부탁했다. 보너스가 아니었다. 홈구장 외부에 대형 플래카드를 걸어달라는 것. 고작 50만원 짜리 현수막을 본 그는 세상을 다가진 표정이었다는 후문이다. “부산전에서 무릎이 부어올랐을 때, 모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 경기장 밖으로 절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사력을 다한 1년의 결실이 남은 45분에 있는데, 어떻게 교체해달라고 하겠나. 그냥 죽기 살기로 뛰었다.”

자신을 사랑해준 이들을 배신할 수 없었다. 경남에 처음 왔을 때, 또 여름이적시장에서 클래식 주요 명문 팀들의 숱한 제안을 거절하고 잔류를 택했을 때 말컹은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영원히 팀에서 회자될 선수가 되자. 내 자신의 족적을 남기자.”

말컹은 자기 자신, 또 모두와의 약속을 지켰다. 다만 미래는 모른다. 스포츠동아와 창원축구센터 내 구단 사무국에서 마주한 10월 18일에도 중국 슈퍼리그의 한 빅 클럽이 400만 달러(약 45억원) 규모의 러브 콜을 보내왔다.

폭등한 가치는 이미 경남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일본 J리그 주요 팀들도 300만 달러 이상의 이적료를 제시하고, 중국은 400만 달러 이상을 부른다. 클래식에서 이를 감당할 팀은 없다. 경남 조기호 대표이사는 “내년 예산안을 봐야 계약연장을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잔류는) 어려울 수 있다. 마음은 붙잡고 싶지만 확신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잔류냐, 이적이냐. 말컹도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이 왔다는 걸 이해한다.

“정말 힘들었고, 많은 걸 이뤘다. 당장은 1년 간 떨어졌던 가족을 빨리 보고 싶다. 주변과 의논하고 심사숙고하겠다. 앞으로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도 변함없는 건 지금 난 경남의 일원이라는 사실이다.”

창원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