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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못 뛰는 ‘시각장애인 축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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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못 뛰는 ‘시각장애인 축구장’

이승건기자 입력 2017-09-20 03:00수정 2017-09-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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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재단 역점사업 ‘드림필드’… 전국 13곳 모두 규정과 달리 지어
全盲 선수들에겐 ‘그림의 떡’ 그쳐… 인조잔디 교체 등 사후관리도 안돼
최근 열린 충북 장애인전국체육대회에서 시각장애축구선수들이 사용한 경기장. 기존의 인조잔디 축구장에 선을 그어 20×40m 규격을 맞춘 뒤 사이드라인에 아크릴 재질의 킥보드를 설치했다. 엔드라인 뒤로는 공간이 충분하다(왼쪽 사진). 대부분의 드림필드는 킥보드 대신 사이드라인을 푹신한 안전펜스가 둘러싸고 있다. 골대 뒤에도 공간이 없다. 사이드라인과 그물 사이에도 공간이 없어 시각장애인들은 부상 위험이 크다. 대한장애인축구협회 제공
“히딩크 감독님이 이런 사실을 알고 계시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죠. 재단 관계자분들은 대답을 얼버무리시더라고요.”(이종수 대한장애인축구협회 사무국장)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71)은 2003년 거스히딩크재단을 설립했다.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되갚기 위해 장애인들부터 돕자는 취지였다. 히딩크 감독은 재단 홈페이지 인사말을 통해 “장애인을 돕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라고도 말했다.

재단의 역점 사업은 ‘드림필드’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경기장’을 내세우며 2007년 충북 충주부터 2015년 경기 이천까지 전국에 13개의 드림필드를 만들었다. 지방자치단체나 교육기관 등이 부지를 기증하고 재단이 구장 조성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재단 전 관계자는 “기업들이 후원했고, 히딩크 감독님도 광고 모델료 등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드림필드가 문을 열 때면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찾았다. 재단은 시각장애인도 초청했다. 이벤트는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개장 이후 시각장애인, 특히 전맹(全盲) 선수들은 드림필드를 찾지 않는다. 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축구는 완전히 시력을 잃은 전맹(B1)과 저시력(B2 또는 B3)으로 구분된다. B1 선수들은 방울이 들어 있는 공을 차며 ‘소리를 따라’ 축구를 한다. 패럴림픽에서는 B1 부문만 정식종목인데 드림필드에는 B1 필수시설인 ‘킥보드(Kickboard)’가 없다. 말랑말랑한 안전펜스가 있을 뿐이다. 사이드라인을 따라 빈곳 없이 설치돼야 하는 킥보드는 대부분 딱딱한 아크릴 재질로 만들어진다. 그래야 이곳에 맞아도 공의 스피드가 유지된다. 킥보드는 사이드라인 아웃을 막고 전술에 활용하기 위한 장치다.

골대 뒤로는 적당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지도자들은 이곳에서 작전을 지시한다. 대부분의 드림필드에는 이 공간도 없다. 엔드라인에도 바싹 붙여 펜스를 설치했다. 이 사무국장은 “재단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만들면 사용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알았다’고 하더니 이후로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동안 기대를 품고 이벤트에 참석했던 시각장애 어린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대한장애인축구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김성일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집행위원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장애인축구 전문가들과는 상의가 없었다. ‘정말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후 관리도 문제다. 시각장애 축구는 그라운드를 구르는 공의 스피드가 빠르고 일정해야 해 천연 대신 인조잔디를 사용하는데 인조잔디는 5, 6년이 지나면 수명을 다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드림필드가 설립된 기관의 관계자는 “재단에 잔디 교체를 건의했는데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서 흐지부지됐다. 지금은 다른 곳의 후원으로 천연잔디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림필드는 비장애인들도 ‘풋살구장’으로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관 방법부터 알기 어렵다. 재단 홈페이지에는 드림필드 13곳이 링크돼 있는데 햄버거 광고가 나오는 곳을 포함해 4곳은 아예 연결이 되지 않고, 나머지도 해당 기관 홈페이지만 나올 뿐이다. 시각장애축구선수 출신으로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감독을 맡았던 이옥형 시각장애인축구연맹 회장은 “규정을 알고 만들었다면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호인은 더 많지만 등록선수 기준으로 200명 정도인 시각장애축구만을 위해서라면 사실 이렇게 많이 지을 필요도 없었다. 앞으로도 만든다면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쓸 수 있는 시설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히딩크 재단#드림필드#시각장애인 축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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