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양종구]착각에 빠진 한국축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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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한국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16강전에서 포르투갈에 1-3으로 허무하게 무너진 데 이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카타르에 2-3으로 패하며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승리와 패배는 병가지상사다. 하지만 한국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환상 속에서 살며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병을 키워 온 측면이 크다.

우리는 2002년의 성과가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이란 ‘족집게 강사’의 명조련과 홈어드밴티지의 합작품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다. 먼저 FIFA는 2004년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피파 피버(FIFA Fever)’란 DVD를 제작했을 때 ‘역대 월드컵 10대 오심’에 한일 월드컵 한국 관련만 무려 4개를 포함시켜 논란이 됐다. 본보가 그해 11월 3일자로 이 내용을 특종 보도했을 때 전 국민이 분노했지만 FIFA는 한국 4강 진출의 이면에는 개최국의 이점이 있었다고 보고 있었다.

물론 억울한 측면도 있다. 히딩크 감독이 조련한 ‘태극전사들’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BBC방송, 미국 스포츠전문 채널 ESPN 등 세계 유수 언론들도 한국의 선전에 감탄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히딩크 감독은 잠시 왔다 간 임시교사였다. 히딩크 감독이 단기간에 대표팀 ‘수능 성적’을 올려주고 떠난 뒤 한국축구는 ‘내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했다. 히딩크 감독이 2001년 초 한국 선수들을 처음 봤을 때 “기술과 정신력은 훌륭하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축구 할 줄을 모른다”고 평가했다. 겉으로 보기엔 잘할 것 같은데 실전에 투입하면 못한다는 뜻이었다. 신태용 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도 16강에서 탈락한 뒤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우리 젊은 선수들은 K리그에서도 출전 명단에 못 들고, 대학에서도 경기를 못 뛰는 경우가 많아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패장의 변명이었지만 한국축구의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사실 한국축구를 두고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축구의 나라’ 유럽이나 남미 국가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축구 인프라와 저변은 논외로 치더라도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유럽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경기를 통한 훈련을 강조한다. 실전이 최고의 훈련이라는 철학이 확고하다. 세계적인 축구 명문 스페인 FC 바르셀로나를 비롯해 유럽 팀들은 연령별 유소년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12세부터 1세 차이(예를 들면 12∼13세, 13∼14세)로 연령별 지역, 전국, 유럽 리그를 치른다. 연령별로 1년에 최소 40경기에서 60경기를 한다.

한국축구는 프로클럽이 아닌 학교에 의존하고 있다. 유소년(12세 이하), 중등부(15세 이하), 고등부(18세 이하)로 나뉘어 있는데 팀당 1년에 20∼30경기를 치른다. 진학을 앞둔 고학년을 제외하면 저학년은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실전으로 다져진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가 성인 대표팀에서도 차이를 만든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2002년 이런 차이를 인지했으면서도 15년 넘게 바꾸지 못했다. 4강 신화 이후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유럽 진출 선수도 늘면서 마치 한국이 축구 선진국이란 착각에 빠진 탓이다. 그런 사이 후진적 유소년 시스템은 그대로였다. 어렸을 때부터 연령별로 경기에 많이 뛸 수 있는 시스템 확보, 한국축구의 최우선 과제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한국축구#20세 이하 월드컵#러시아 월드컵#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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