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부자 초상화 아래 은색 짝짝이가 쉼 없이 부딪쳤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3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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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5월1일 경기장.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평양 5월1일 경기장.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평양, 그리고 북한축구의 현주소

남북대결 열린 김일성경기장 가득 찬 관중
일사불란한 응원…한국 공격 땐 거센 야유

5월1일경기장, 불시착한 낙하산 모양 설계
15만명 수용…한국 선수들 웅장함에 압도

두 곳 모두 비용·관리 문제로 인조잔디 교체


평양은 ‘가깝고도 먼 곳’이다. 폐쇄적인 사회특성상 북한과 평양은 그동안 제한적으로만 문호를 열어왔다. 그런 면에서 3일부터 11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B조 예선전은 한국 미디어가 평양의 현실과 북한축구의 실상을 모처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번 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본 공동취재단의 눈을 통해 평양과 북한축구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편집자 주>.

베일에 쌓여있던 북한축구의 심장부가 한국 취재진에게 공개됐다. 북한은 3일부터 11일까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B조 예선전을 개최했다. 윤덕여(56)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대표팀과 동행한 국내 취재진도 자연스럽게 김일성경기장을 비롯한 평양의 모습을 일부 목격할 수 있었다.

평양에는 서산축구장, 양각도축구장 등이 있지만 대표적 경기장은 김일성경기장과 5월1일경기장(능라도경기장)이다.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이 이번 예선을 치른 김일성경기장은 북한남자축구대표팀이 2011년 11월 벌어진 일본과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북한은 일본을 상대로 예상외의 우세를 보인 끝에 1-0으로 이겼는데, 소수의 일본원정응원단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북한 관중의 기세에 눌려 별다른 함성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윤덕여호’ 역시 7일 김일성경기장에서 펼쳐진 남북대결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4만2500명의 북한 관중은 킥오프 2시간 전부터 경기장 옆 개선문광장 주위로 몰려들었다. 경기장 분위기는 한국에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 북한응원단은 금색 종이나팔과 은색 짝짝이를 쉼 없이 두들기며 커다란 소음을 토해냈다. 한국의 공격 때는 일방적 야유가 쏟아졌다. 양 팀 선수들의 기싸움도 경기 초반부터 팽팽했다. 전반 5분에는 골키퍼 김정미(33·인천현대제철)가 북한 위정심의 페널티킥을 걷어낸 뒤 재차 볼을 잡는 과정에서 북한 선수에게 얼굴을 가격 당했고, 양 팀 선수들이 한동안 몸싸움을 벌이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김일성경기장 옆 개선문은 김일성이 해방 후 북한에서 처음 연설했던 장소를 기념한 건축물이다. 1982년 60m 남짓한 높이로 완공됐다. 개선문 완공에 맞춰 평양공설운동장이 김일성경기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평양 시내 다른 상징적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경기장 외부 중앙 상단에 걸려있다.

우리 대표팀이 6일 훈련을 소화한 5월1일경기장도 북한이 자랑하는 건축물들 중 하나다.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만으로는 세계 최대 수준이다. 대동강 능라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노동자의 날’을 강조하라는 김일성의 지시로 5월1일경기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89년 5월 1일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를 치르면서 개장됐다.

5월1일경기장은 불시착한 낙하산 모양으로 설계됐다. 관중석을 16개의 아치 모형이 덮고 있고, 가장 높은 곳은 61m에 달한다. 한국 취재진을 맞은 경기장 안내원은 “진도 8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 설계가 돼 있다”고 자랑했다. 큰 규모에 맞게 스탠드 아래쪽 경기장 내부에는 큰 통로와 도핑실, 토론회실, 워밍업실 등 여러 공간이 있고, 통로 벽면에는 2013년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당시의 북한여자대표팀 우승 장면 등 북한의 기념적인 스포츠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5월1일경기장은 1990년 남북통일축구가 개최된 장소로도 유명하다. 윤 감독은 당시 선수로 참가한 이후 27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경기장 곳곳에 국제축구연맹(FIFA) 로고가 표시돼 있기도 하지만, 본부석 스탠드 위쪽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다. 또 10만명 내외를 수용할 수 있는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스타디움처럼 경기장 외부에서 필드로 곧바로 진입하려면 어둡고 음산한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북한은 상징적인 축구경기를 대부분 김일성경기장과 5월1일경기장에서 치른다. 북한프로축구 1부리그에는 15개 팀이 참여하는데, 강팀으로는 4.25체육단, 기관차, 홰불체육단 등이 있다. 1부리그 팀들은 만경대상, 백두산상, 보천보홰불상 등 1년에 4개 정도의 대회에 출전하고, 매 대회 결승전은 김일성경기장과 5월1일경기장에서 번갈아 열린다.

김일성경기장과 5월1일경기장 모두 2000년대 중반 이후 운영비용과 경기장 관리 등의 문제로 인해 인조잔디를 깔았다. 경기와 훈련을 위해 두 경기장을 모두 사용해본 여자대표팀 주장 조소현(29·인천현대제철)은 “5월1일경기장은 생각보다 더 웅장한 것 같다. 느낌이 다르다”며 “김일성경기장은 인조잔디의 길이가 길다. 인조잔디 수준은 한국과 다르지 않고, 캐나다에서 열렸던 여자월드컵(2015년) 당시의 인조잔디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평양 |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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